그러나 이날 책거리 비용을 댄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친 노(老)스승이었다. 학생들은 스승에게 작은 선물을 바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시경 강독을 한 사람은 ‘주역(周易)의 대가’로 이름난 대산(大山) 김석진 옹(82)으로 유성에서 2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30개월 간 매주 한차례 2시간씩 수업을 진행했다.
김석진 옹은 “시경은 다른 글(경서)과 달리 못 보던 한자가 수두룩하게 나오고 쉬운 글자도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어려운 책”이라며 “그런 글을 2년 반이나 공부했다는 것은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제자들을 격려했다.
우리나라엔 시경을 원전(原典)으로 강의하는 곳이 없다. 대산의 강의가 유일했다. 그의 시경 강의 소문이 중국까지 전해져 중국의 한 시경학회가 학술교류를 위해 한국의 시경 권위자를 찾던 중 대산의 소문을 듣고 관련 서적을 보내왔을 정도다.
김 옹은 “중국에선 주역보다 시경을 더 많이 공부하고 시경학회도 많지만 시경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시경 공부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번에 시경을 공부한 사람들은 교수, 교사, 연구원, 의사 등으로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양 학문보다 동양고전에서 지혜를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수강생 대표를 맡았던 김선진(49)씨는 “공자가 ‘삿됨이 없는 것’즉 ‘사무사(思無邪)’란 말로 정의했던 시(詩)의 본래의 의미가 궁금했었다”며 “선생님 강의로 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동양 고전 전반에 대해서도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김석진 옹은 오는 10월 9일부터는 서경(書經)을 강독한다. 상서(尙書)라고도 불리는 서경은 `이제삼황(二帝三王)' 즉 요(堯)·순(舜)과 하나라의 우(禹)와, 은나라의 탕(湯), 주나라의 문왕(文王)·무왕(武王) 때 정치를 기록한 책인데 물론 원전으로 한다.
‘시경은 웃고 들어와 울고 나가고, 서경은 울고 들어와 웃고 나간다’는 말이 있다. 시경과는 반대로, 서경은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쉽다는 뜻이다. 서경의 진수를 알아보고 싶은 사람은 `동방문화진흥회'(042-823-8812)로 문의하면 된다.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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