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완하 시인·한남대 문창과 교수 |
그러다가 해가 지고 나면 기온은 낮아지고 시원하다. 이곳은 일교차가 커서 아침이나 저녁으로는 긴 팔의 옷을 걸쳐야 한다. 바닷가 쪽으로 갈수록 기온이 낮아지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반드시 긴팔 옷을 입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이곳의 사람들은 언제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옷을 다 꺼내놓고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서 입는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이곳은 공기가 맑기 때문에 너무 상쾌한 기분이 든다. 하루종일 창문을 열어두어도 먼지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밤이 되면 하늘에는 별이 뜨기 시작한다. 우리가 머무는 아파트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면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보인다. 나는 자주 어둠 속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윤동주 시인처럼 별을 세어본다. 그러다 보면 내가 여러 편의 <별> 연작시를 쓰던 1990년대 초반을 떠올리게 되어서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한국에서 보던 북두칠성은 이곳에 그 위치가 다르게 걸려 있다. 한국에서는 하늘 중앙 쪽으로 있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서쪽으로 조금 낮게 떠 보인다. 그러나 그 일곱 개의 별들만은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보름날 밤이면 둥근 달이 하늘에 걸려서 그야말로 추석을 연상시킨다. 근년에 들어와서 추석이 되어 꼬박꼬박 고향에 갔다 오곤 했어도, 언제 한번 하늘의 달을 보며 가슴 크게 펴고 심호흡을 했던 적이 있었나를 생각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별다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밝은 달빛이 사방을 비추고 고요하게 밤이 열리니 마음 그득히 풍요가 쌓이는 듯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이곳에 있기에 한국의 고향에 갈 수 없다는 마음이 달빛을 더욱 더 절실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까닭일 것 같다.
요즈음 저녁때는 작은 아들과 근처에 있는 잔디구장에 가서 축구를 한다.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축구부 선수를 모집하는데 아들이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왕 신청을 했으니 결과가 좋아야 하지 않겠냐며 아들의 축구연습을 도와주고 있다. 아들과 공을 주고받다가 잠시 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 구석 저 구석에 굵고 잔 별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하늘 밭에 별을 뿌려놓아 그 별들이 이제 막 싹을 틔우는 것 같다. 하늘 구석마다 어둠을 일구어 별빛을 심어 놓은 듯하다. 푸른 잔디밭 위로 쏟아지는 별빛은 너무 포근한 것이어서 잔디에 누우면 별들이 내려와 덮어줄 것만 같다.
일주일이 지나면 추석이다. 내가 그동안 군대를 가서 보냈던 두 번의 추석을 빼고는 고향에 가지 못한 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득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고향을 생각하고 그 추억이나 되새기며 추석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이제 비로소 한국의 하늘이 보이고 그곳에 떠오른 보름달이 보인다. 뒷동산에 훤히 내걸린 추석 보름 달빛을 안고 마을의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거북놀이를 하던 어린 때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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