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 |
다행히 날씨도 맑고 선선한데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초ㆍ중ㆍ고 학생 및 대학ㆍ일반부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 300여 명의 많은 참가자들이 성원을 이룬 가운데, 관계 기관의 내빈들을 모시고 백일장을 개최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글제를 발표 하는 것으로 백일장이 시작되었는데, 글제는 초등생: 편지, 시험. 중학생: 자전거, 가을 산. 고등학생: 아버지, 나무. 대학생 및 일반부: 국화, 축제이었다.
각자 지정된 장소로 흩어져서 글재주를 발휘하여 창의적인 작품을 쓰고 12시 30분까지 제출하도록 했는데, 참가자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골똘히 시상을 잡고 작품을 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행사가 시작되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좀 언짢은 장면을 목격하였다. 어떤 자모 한 분이 자기 아이(중학생) 옆에 붙어 앉아 열심히 작품을 고쳐주고 있었다. 당장 그만두게 하고 싶었지만 일단 그 학생의 인상착의를 기억해 두었다가 작품을 접수시킬 때 비표를 하여 낙선 처리하도록 하였다.
시상식이 끝나갈 무렵 그 자모가 단상으로 와서 자기 아이가 왜 입상이 안 되었느냐고 따지듯이 묻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자모님이 고쳐 주었기 때문에 낙선되었다고 단호히 말해 주었더니,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황망히 가버렸다. 순간 내가 좀 심했나싶었지만 매년 백일장을 운영하다 보면 어린 학생들보다도 어른들이 상에 욕심을 내어 작품을 고쳐줌으로써, 오히려 그 순수한 작품을 망치고 백일장의 의미를 훼손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어른들의 지나친 욕심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대신 써준 작품으로 상을 받게 해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 만에 하나라도 대신 써준 작품이 입상작으로 선정되어 상을 받았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오래 갈까. 심사위원의 눈을 속이고 거짓으로 상을 받았다는 그 사실을 남은 모른다 해도 자기 자신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아마도 그 아이에겐 평생 가위눌림의 멍에가 될 것이고 다시는 백일장에 나가기는커녕 아예 글짓기를 포기할 지도 모른다.
한편 우리 대전에서는 시조의 보급과 계승 발전을 위하여 원로 시조시인들께서 각 학교나 평생교육 기관 등을 찾아다니면서 <시조교실>을 열고 시조 짓기 교육에 앞장서고 계시다. 모쪼록 많은 학교에서 이런 기회를 널리 활용하여 학생들의 시조 짓기 공부가 활성화되고 우리 고유의 문학인 시조에 대하여 자긍심을 갖고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또한 그 자모님께서도 ‘시조 교실’을 찾아 시조를 익히고 아이와 함께 내년 백일장에 꼭 참가하여 좋은 작품으로 당당하게 모자(母子)가 입상하는 기쁨을 누리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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