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료칸)에 도착하면 오카미(여주인)부터 전 종업원이 나와서 큰절을 하며 손님을 맞이한다. 조금 쑥쓰럽지만 절을 받으며 들어서는 손님은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들의 환대가 단순히 상술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끊임없는 예절연습으로 익숙해진 입 인사와 몸 인사가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
손님의 동선을 따라 흐르는 디자인
일본의 목욕탕도 재미있다. 여관에는 일본의 간편한 전통 의상인 유카다가 잘 정돈되어 있다. 마치 손님의 사이즈를 알고 있었다는 듯 적당히 알맞은 사이즈로 개켜져 있다. 그 옷을 입고 목욕탕으로 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종업원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그들은 언제 마주치든 늘 처음처럼 인사를 하고 지난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노텐브로(노천온천)가 있고 때에 따라 여탕과 남탕의 물이 작은 구멍을 통하여 왔다갔다하게 만든 디자인에서는 익살스러움도 느껴진다. 특히, 차가운 겨울 노텐브로에서의 따끈한 정종 한잔은 세상 시름을 잊게 하는 천하 명약이 된다. 그렇게 일본의 여관에서는 손님의 동선을 따라 동적인 디자인이 함께 흐른다.
디자인으로 차려지는 저녁 만찬
목욕 이후 받게 되는 저녁상은 정적인 디자인의 모둠이다. 개인별로 한상씩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차려지는 상에 올려진 음식들은 그냥 음식이라기 보다 마치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인 장인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이쯤 되면 사람이 요리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가 손님의 식욕을 디자인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열과 색을 배려해 세심하게 디자인 된 상을 마주하는 순간은 누구나 예술과 어우러지는 감흥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보낸 후 돌아온 방에서 비움과 여백의 아름다운 품에서 깊고 달콤한 잠을 선물 받으며 밤을 접는다.
동학사에 가면
동학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요즘은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까지 이러한 고찰에서의 템플 스테이가 인기있는 체험 코스로 꼽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디자인 전문가인 필자에게는 템플 스테이의 수행과 체험 이외에도 유서 깊은 사찰의 천년 디자인을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천년고찰의 존재를 알고 동학사에서의 하룻밤을 청하는 지인들의 청탁을 받게 되는데 그럴 때면 지인들의 잠자리와 식사 걱정에 빠지게 된다.
일본 여관(료칸)의 정교한 서비스나 잠자리처럼 깎은 듯한 디자인에 감탄을 잘하는 현대인들이기에 상대적으로 치장되지 않고 배려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숙박과 서비스 문화가 자칫 불편으로 비쳐질까 우려되기 때문인데 이 또한 디자인을 표피적으로 이해하는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되는 안타까움이다.
불편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요즘은 보다 편리하고 편안한 생활을 위한 고민이 넘쳐 오히려 몸이 망가지는 시대다. 사람들은 디자인이나 미술을 한다고 하면 늘 `멋지고 세련됨'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요즘 같이 몸을 쓰지 못하게 하는 디자인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오히려 `불편한 디자인'이 몸을 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치있는 디자인이나 미술의 가치는 시대환경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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