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규]동학사의 하룻밤을 아쉬워하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오치규]동학사의 하룻밤을 아쉬워하다

[문화초대석]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 승인 2009-09-20 13:24
  • 신문게재 2009-09-21 20면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디자인이 넘치는 일본 여관

여관(료칸)에 도착하면 오카미(여주인)부터 전 종업원이 나와서 큰절을 하며 손님을 맞이한다. 조금 쑥쓰럽지만 절을 받으며 들어서는 손님은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들의 환대가 단순히 상술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끊임없는 예절연습으로 익숙해진 입 인사와 몸 인사가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감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가면 가지런한 정리정돈과 정갈하게 노여진 차 세트를 마주하게 되는데 가벼운 탄성이 절로 나오고 피로마저 풀리는 기분이 든다. 미리 생면부지의 손님을 배려해 준비한 여러 종류의 차와 함께 들 수 있는 와가시(과자류)가 놓여있는 모습까지 일본 방문 길에 종종 들르게 되는 료칸에서 나는 일본스러움이 잔뜩 배어나는 생활 속의 디자인을 목격하곤 한다.

손님의 동선을 따라 흐르는 디자인

일본의 목욕탕도 재미있다. 여관에는 일본의 간편한 전통 의상인 유카다가 잘 정돈되어 있다. 마치 손님의 사이즈를 알고 있었다는 듯 적당히 알맞은 사이즈로 개켜져 있다. 그 옷을 입고 목욕탕으로 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종업원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그들은 언제 마주치든 늘 처음처럼 인사를 하고 지난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노텐브로(노천온천)가 있고 때에 따라 여탕과 남탕의 물이 작은 구멍을 통하여 왔다갔다하게 만든 디자인에서는 익살스러움도 느껴진다. 특히, 차가운 겨울 노텐브로에서의 따끈한 정종 한잔은 세상 시름을 잊게 하는 천하 명약이 된다. 그렇게 일본의 여관에서는 손님의 동선을 따라 동적인 디자인이 함께 흐른다.

디자인으로 차려지는 저녁 만찬

목욕 이후 받게 되는 저녁상은 정적인 디자인의 모둠이다. 개인별로 한상씩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차려지는 상에 올려진 음식들은 그냥 음식이라기 보다 마치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인 장인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이쯤 되면 사람이 요리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가 손님의 식욕을 디자인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열과 색을 배려해 세심하게 디자인 된 상을 마주하는 순간은 누구나 예술과 어우러지는 감흥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보낸 후 돌아온 방에서 비움과 여백의 아름다운 품에서 깊고 달콤한 잠을 선물 받으며 밤을 접는다.

동학사에 가면

동학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요즘은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까지 이러한 고찰에서의 템플 스테이가 인기있는 체험 코스로 꼽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디자인 전문가인 필자에게는 템플 스테이의 수행과 체험 이외에도 유서 깊은 사찰의 천년 디자인을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천년고찰의 존재를 알고 동학사에서의 하룻밤을 청하는 지인들의 청탁을 받게 되는데 그럴 때면 지인들의 잠자리와 식사 걱정에 빠지게 된다.

일본 여관(료칸)의 정교한 서비스나 잠자리처럼 깎은 듯한 디자인에 감탄을 잘하는 현대인들이기에 상대적으로 치장되지 않고 배려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숙박과 서비스 문화가 자칫 불편으로 비쳐질까 우려되기 때문인데 이 또한 디자인을 표피적으로 이해하는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되는 안타까움이다.

불편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요즘은 보다 편리하고 편안한 생활을 위한 고민이 넘쳐 오히려 몸이 망가지는 시대다. 사람들은 디자인이나 미술을 한다고 하면 늘 `멋지고 세련됨'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요즘 같이 몸을 쓰지 못하게 하는 디자인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오히려 `불편한 디자인'이 몸을 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치있는 디자인이나 미술의 가치는 시대환경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