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몸이 점차 마비되어 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종우는 어머니 장례를 치르다가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랐던 장례지도사 지수를 만난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종우의 병세가 악화되는 바람에 병원에서 지내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시작한다.
“나 몸이 굳어가다 결국은 꼼짝없이 죽는 병이래. 그래도 내 곁에 있어줄래?”
‘내 사랑 내 곁에’는 영화보다 주연배우 김명민의 감량투혼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영화다.
루게릭병. 지능 의식 감각은 정상인 채 온몸의 근육이 점차 마비되어 가는 희귀병. 말짱한 정신으로 하루하루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변해가는 자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으로 불린다. 김명민은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는 종우를 연기한다.
김명민은 초반 야위어 가는 장면에선 5~10㎏을 감량했지만 병이 심각해지는 후반에는 10㎏을 더 줄여 20㎏을 감량했다.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난 미라 같은 모습에, “참, 징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배우가 몸을 희생한 거야 칭찬할 만하지만 야윈 몸에 눈이 자꾸 가 출중한 그의 연기를 놓치는 건 아쉽다. 혼신을 다해 죽어가는 환자의 내면을 절절히 풀어낼 때조차도 그의 푹 꺼진 뺨과 두드러진 광대뼈에 눈이 가는 것이다.
병으로 꺼져가는 김명민의 연기에 숨결을 불어넣는 건 하지원이다. 김명민이 감내하고 참아내는 절제의 멜로 연기를 보여준다면 하지원은 터뜨리고 내지르는 분출의 연기로 채워준다.
하지원은 죽어가는 자신의 남자를 지켜봐야 하는 장례지도사 지수 역. 죽음에 다가가는 종우의 정신을 붙들기 위해 때론 춤과 노래를, 때론 진한 애정 공세를 펼치는 지수의 모습은 안타깝고도 매혹적이다. 막판 눈물 연기는 관객의 눈물까지 쏙 빼놓으며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보다 배우들이 주목을 받는 건 ‘내 사랑 내 곁에’가 지닌 숙명이다. 점점 죽어가는 남자와 그를 곁에서 지켜보며 아픔을 삼켜야 하는 여자의 이야기 구도는 사실 새로울 게 없다. 관객이 결말을 알고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얼마나 흥미롭게 채워 가느냐 하는 것. 그게 배우들의 몫이고 연출가의 몫이다.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 감독은 특유의 직설법을 다시 한 번 펼친다. 직선으로 달려가는 연출엔 신선한 무엇이 없다.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있지만 이야기의 새로움이 없다. 그렇기에 배우들의 연기로만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하다.
최루성이라고 하기엔 눈물의 강도가 약하고 삶과 이별에 대한 통찰을 다뤘다기엔 이야기의 폭이 넓지도 깊지도 않다. 슬픈 감정보다는 안타까운 느낌이 더 강하다. 하지원에겐 떠나라고 충고하고 싶고, 김명민에겐 잡으라고 충고하고 싶어진다. 감정의 눈물이 북받치기보다는 가슴의 답답함이 오히려 죄어드는 것이다.
그런 답답함을 풀어주는 건 유사한 증상의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이 모여 있는 6인 병실의 풍경이다. 임하룡 남능미 신신애 강신일 송영창 김광규 등 연기파 중견배우들이 눈물과 감동, 웃음을 풀어놓는다.
긴 세월 병 수발을 해온 할머니(남능미)가 끝내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따귀를 연거푸 때린 뒤 무너지는 장면은 이 영화가 도달한 가장 깊은 지점을 보여준다. 가족이 아니라면 그 누가 그 긴 세월 병석을 지키겠는가. 그렇다. 환자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병석에 누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뒤에 남는 사람의 그 참혹한 고통을 알고 있다. 24일 개봉.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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