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인절미는 백제문화제 때 썼던 754m짜리가 국내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잡아당겨 자르는 떡이라 인절병(引切餠, 인절미(引截米)로 적는다고 애써 내력을 무시할 일은 아니다. 떡이름 하사 이전에 떡이 있었듯 행주치마도 행주대첩 이전에 있었다, ‘거덜나다’의 ‘거덜’은 사복시라는 관청에서 말을 맡던 하인이었다, ‘구이’는 수라상의 고기나 생선을 구운 거였다, 이런 식으로 올라가면 한도 끝도 없다.
미스김, 미스리가 있는 역전다방, 샘다방의 ‘다방’은 이래봬도 차(茶)를 담당하던 궁중관청이었다. 매 잡는 관청 ‘응방도감’이 있었다면 말 다했고, 오늘은 ‘시치미’나 붙잡고 늘어지련다. 좋아한다고 마음을 털어놓아도 찻잔만 바라보며~. 소위 ‘뽕필’인 ‘시치미’의 가사처럼, 애타는 내 마음 알고서도 모른 체하면 얄미운 시치미다.
그 옛날, 대광우리 철철 넘치는 게 성기라는 사연도 모르고 도라지타령을 하던 쑥스러운 입들, 너도 총각 나도 총각 하나씩 안고 에헤야 군밤아, 알지 못할 군밤타령을 열심히들 따라 불렀지. 공주 정안 군밤처럼 고소한 성적 감정의 비유라고 자수했던들 어디 음악책에나 실렸을까? 우리 모두는 원작자의 시치미에 놀아났다.
‘시치미’는 매의 꽁지에 매단 쇠뿔 이름표다. 이름표를 단 매가 날아들면 닭값이나 받고 주인에게 돌려줬는데, 견물생심의 양심불량이 혹간 있었다. 꽁지에 매단 시치미를 뚝 잡아떼고서 말이다. 시치미가 그렇듯이 보라매도 몽골어(색깔이름, poro)의 합성이다. ‘옹골지’라는 식당, 야무지게 잘해낼 때 쓰는 ‘옹골차다, 옹골지다’조차 몽골과 연관 있다.
배철수와 구창모부터 연상되는 ‘송골매’도 몽골말 ‘송고르’가 발원이다. 매 상납을 위해 귀송골, 거졸송골, 저간송골, 거거송골 등의 전국 수배령이 내려지던 시절은 역사 속 상상으로 족하다. 매사냥 기능을 보유한 프랑스, 벨기에, 체코 등 11개 나라 공동으로 대전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사실이 그보다 중요하다.
고려응방과 국내 유일무이의 전통 매잡이가 있는 대전이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매잡이 본고장으로 주목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껑충껑충 잔솔밭 꿩을 쫓는 ‘북나들이’, 식장산 어디선가 수직으로 솟구치는 ‘봉솟굼’, 대전 하늘 휘저어 낚아채는 ‘공중잽이’….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인간이 영악하면 자연도 영악해진다는데, 매들은 얼마나 그악스러워졌을까?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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