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오]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박헌오]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

[시론]박헌오 동구 부구청장

  • 승인 2009-09-16 18:56
  • 신문게재 2009-09-17 21면
  • 박헌오 동구 부구청장박헌오 동구 부구청장
어쩌면 사는 것은 잃어버리는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릴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어서 다시 잃어버리기도 하고, 좀 더 간직해야 할 것들 조차 무참히 버리고 마는 때도 있다.

▲ 박헌오 동구 부구청장
▲ 박헌오 동구 부구청장
엊그제는 잠시 헌책방에 들렀는데 놋그릇으로 된 제기(祭器)를 가지고 온 부부가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다툼을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왜 제기를 팔아버리려 하느냐고 화를 내고, 부인은 팔아버리지 무엇하느냐고 처분을 강행하려는 것이었다. 부부의 언쟁은 집에서부터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것이고, 결국은 부인의 뜻대로 결론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부부는 꽤 오랫동안 제기를 보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유물과 유산들을 크게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우리 민족의 정형시요, 겨레의 문화가 담긴 가사인 시조(時調)의 백일장이 열렸다. 대전광역시가 1985년부터 이를 계승하기 위해서 매년 열고 있는 시조 짓기에 전국에서 500여명이 참여했다. 국내에서 가장 깊은 역사를 가진 전통시조 백일장에 참여인원이 이렇게 빈약한데는 이유가 있다. 시조는 신라의 향가로부터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는 민족시가인데, 일제강점기에 끈을 잃어버리고 말아 교수들이나 국어 교사들이 대부분 시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참여하는 학생들을 확보하는데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정형시의 뿌리를 가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나 비정하게 느껴진다.

 올 추석명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운전을 하고 고향에 갈 것이다. 옛날에는 운전하시는 분들을 보고 ‘일부 기름밥을 먹는 사람들은 좀 억세고 말을 거칠게 한다’는 오해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멋진 세단을 타고 세련된 교양과 낭만적인 연기를 보이는 배우를 보면서 부러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즈음 운전을 하다보면 상식을 잃어버린 운전자들이 길 가운데 담배꽁초를 상습적으로 버리고, 운전이 서투르신 어른들을 보고 욕설을 서슴치 않는 분통터지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상식과 교양을 다 잃어버린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고서를 탐독하고, 땅속에 묻힌 매장품들을 엄청난 비용을 들여 발굴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오늘의 우리 사회는 선배들이나 어느 전임자들의 공적을 정리해놓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질적인 현대사는 실종되고 한 장의 준공식 사진 속에 숨겨질 뿐이다. 완성은 시작으로부터 고비 고비 고뇌와 땀이 점철된 끝에 이루어지는 이벤트임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악순환은 관성을 받아 지속적으로 가속되고, 역사속의 진실은 위선의 함정 속에서 위장당하고 말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추석명절을 앞두고 조상들의 묘소를 돌보고 음덕을 기리기 위한 이동으로 주말교통이 많이 밀린다. 명절은 사랑의 축제이다. 가족과 친지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조상님들도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니 정(情 )이 많은 우리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는 미풍양속인 것이다. 그러나 정을 잃어버린 자리도 혼재되어 있으니 망각과, 무관심과, 오해와, 증오를 빌미삼아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버려두는 때가 많다. 그같이 잃어버린 사랑의 자리를 찾아 마음을 할애하는 명절이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일들은 가을하늘의 별보다도 많아 보인다. 분명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성과 배려가 필요하다. 가보(家寶)로 보존되어오던 소중한 유물이 무자격자에게 불로소득이나 안겨주고,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훈도들이 되찾아야 문화유산들을 방치하고,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스스로 자행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며, 정직하게 기록되어야 할 역사들이 묻히고 왜곡되는 경우, 사랑과 정분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가는 허무함을 막아 서보자.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바로세우기 위해 힘쓰고,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물려주기 위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