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윤도 건양대 교수 |
흑룡강성 하얼빈시의 8월말은 아직 여름은 여름인데 아침저녁 잠시 서늘한 바람은 웬지 강추위의 비수라도 숨겨진듯 공연히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중국 지도 동북3성(省)을 펼치면 가장 북쪽에 위치한 흑룡강성은 한반도 보다도 훨씬 북쪽이며 러시아의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경계로 하고 있어 보기에도 ‘동토(凍土)’로 느껴지는 곳이다.
그러나 막상 흑룡강성 성도 하얼빈시에서 느껴지는 것은 인구 1천만 대도시의 어마어마한 개발 열기였다. 도도하게 흑룡강성 중부 평원을 흐르는 쑹화강(松花江) 남쪽으로 펼쳐진 하얼빈시의 고층건물들로 가득한 스카이라인은 이곳이 겨울에는 ‘빙등제(氷燈祭)’라는 얼음축제가 몇 달씩 열릴 정도로 사방이 꽁꽁 얼어붙는 동토임을 상상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면적 46만㎢. 이곳 사람들은 흔히 일본열도(36만㎢)와 남한(약10만㎢)을 합친 넓이라고 말한다. 인구는 3천8백만명. 중국에서 면적이 6번째 큰 성이며 한족(漢族)이 90%이상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46개의 민족이 살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연결 철도 공사로 일찍이 러시아에 의해 개발된 이 도시는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러시아거리, 러시아 성당과 건축물 등 러시아풍이 깊이 배어 있다. 높지 않은 약간의 산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원으로 옥수수밭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흑룡강성 전체에 조선족은 30만명이고 하얼빈시에만 5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120만명이 사는 남쪽의 지린성(吉林省)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되지만 그래도 많이 거주하는 편이다.
이 하얼빈시와 우리 민족과의 인연은 물론 19세기말 러시아의 동청(東淸)철도 건설에 참여하였던 2천여명의 조선인 노동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0세기 들어서는 우리 민족의 영웅인 안중근의사로 말미암아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금도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하얼빈역은 물론 안의사가 거사 전후 하얼빈에 체류했던 11일간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곳곳에 안의사 유적지들이 잘 보존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는 하얼빈역 플랫폼. 과거에 일제가 이토의 흉상을 세워놓았던 것을 중국정부가 헐었다고 하나 세모와 원 표식 이외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어 아쉬움이 크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도리구(道里區) 안덕가(安德街)에 위치한 조선민족예술관 2층에는 안의사 기념관이 있어 안의사의 일대기와 의거 준비 및 거사 상황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의거 현장 모형도 등을 통해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매일 백여명의 조선족 학생들과 한족 학생들이 관람을 온다는 것이다.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관훈클럽이 하얼빈에서 주최한 ‘중국인 눈에 비친 안중근 의사 의거’ 세미나에 참석과 뤼순(旅順) 감옥, 다렌(大連)시의 방문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민족 영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하는 귀한 기회였다. 그는 한국인의 영웅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의롭고 당당한 한국인의 표상으로 길이 기억되고 있었다. 내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의사에 대한 대대적인 재조명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