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전 한남대학교 사회문화대학원장.대전 연극협회장 |
이 전쟁의 역사는 그리스의 영웅들이 당시 아시아의 최고 번영 도시 트로이아를 약탈하려 벌인 10년 동안의 전쟁이었다. 트로이 원정은 그리스 인들이 애독하는 신화이며 역사지만 현대 터키인들을 포함한 아르메니아인들로서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패배의 역사적 기억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트로이 유적 현장은 황폐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 현지 관광해설가는 트로이 신화에서 그리스 영웅들이 파리스가 헬레나를 유혹해 간 것을 민족적 모독으로 명분 삼아 원정한 것을 시니컬한 음성으로 부정한다. 호머 때문에 너무 유명해진 이야기의 영향을 어찌하지 못하지만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듯했다. 터키를 찾는 관광객이 트로이 유적 방문 의사를 밝히면 은근히 끼워팔기하는 대목이 `갈리폴리' 방문이다. 터키의 갈리폴리를 아는 한국인들은 별로 많지 않을 듯 싶다. 한국인들이 들를만한 곳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다르다넬레 해협 어귀의 고대 트로이에서 약 25 쯤 안쪽으로 올라와 있는 곳에 갈리폴리라는 나지막한 산이 있다. 이 산에서 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5년 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윈스턴 처칠이 해군장관으로 있던 영국은 붕괴 직전의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로 진출하는 것이 좌절되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동원한 병력과 함께 갈리폴리 상륙 작전을 벌이게 되었다. 약 1년 동안 계속된 전투에서 영국 연합군과 터키 양측에서 모두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전투로 오스만 터키는 풍전등화 같았던 나라의 목숨을 건졌다. 이때 빈약한 무장으로 나라를 지켜냈던 터키측 지휘관 무스타파 케말은 이 전투를 통해 이름 없는 군인에서 일약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때 명성을 얻게 된 그는 1차 세계 대전의 패망 이후 터키 본토를 침공해온 그리스 군을 몰아내고 내부의 분열을 극복한 후 이슬람 종교국가였던 오스만 제국을 대신한 터키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이 케말과 그의 카리스마가 없었더라면 인구 7200만에 한국(남한)의 약 8배 크기(78만㎡)의 중동의 떠오르는 강국 터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국의 아버지”라는 의미인 `아타튀르'라는 성씨(姓氏)를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았다. 20세기 초에 이룬 외세침공에 대한 터키의 승리는 과거 트로이 패망의 치욕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현대 터키 개국의 아버지 카멜 아타튀르는 터키 내부의 정파와 지역을 떠나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고 있다. 그는 역사에 씌어진 인물이 아니라 역사를 쓴 인물이 된 것이다.
지난 8월 부끄러움 없이 세계인에게 내세울 수 있는 한국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결국 세상과 이별을 했다. 한국이 IMF위기에 내몰려있을 때 그 상황을 타개할 인물로 사용되기 위해 일생을 시달리며 달려온 그의 삶이었을까? 존경받는 개국의 아버지를 갖지 못한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파와 지역에 따라 평가를 달리한다. 현대 한국의 어두운 한 양상이지만, 그러나 역사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최초로 존경받는, 한국 민주주의와 통일 운동의 역사를 쓴 대통령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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