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김대중 그니의 노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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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김대중 그니의 노을 앞에서

[중도춘추]강병철 시인

  • 승인 2009-09-10 18:50
  • 신문게재 2009-09-11 20면
  • 강병철 시인강병철 시인
신군부 아래 법조인들의 사형선고가 매스컴에 터져나오던 흑백 TV 막바지 시절이다. 소위 해방 이후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총 망라된 리얼한 역사 현장의 법정이다. 공소장만 장장 한 시간 27분에 걸쳐 낭송되었고 김대중의 최후 진술 역시 한 시간 48분이 걸렸다. ‘내가 죽더라도 우리나라는 국민의 손에 의해 민주주의가 살아날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깁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의 목소리는 당연히 전달되지 않았다. 그 대신 스크린과 스포츠와 향락의 배경들이 모락모락 초점을 흐리게 했다.

▲ 강병철 시인
▲ 강병철 시인
짝사랑에서 빛이 바래기도 했다. 특히 87년 대선에서의 후보단일화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뛰었지만 복잡한 장애가 앞을 막았다. 87년 6월 항쟁도 끝난 한 참 뒤 선거 국면이었던가. 농성 중이던 해직교사들이 다시 우르르 유치장에 수감되었고 몇몇 해직교사들과 인권위 사무실에 남아있다가 선건운동 행보 중이던 그와 악수를 나누기도 했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분열된 DJ와 YS. 그 두 보스가 나란히 1,2등을 먹는 그런 선거는 절대로 없었다. 시청앞 100만 군중의 유월 추모행사와 무관하게 선거 결과는 다시 집권당 후보의 빵빠레로 장식되었다. 그랬다. 역사가 나선형으로 발전하는 데만 해도 무수한 희망과 절망이 오르락내라락거렸고 병들고 멍들고 깨져 죽기도 했다.

92년, 12월 나는 대통령선거 개표요원이었다. 뚜껑을 열자 삼당 합당을 ‘구국의 결단’이라며 생뚱한 슬로건을 내건 YS가 승리자였고 그는 세 번째 외로운 패자가 되었다. 이제 그와 민초 아무도 영원히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매스컴은 완전히 난리 부르스를 떨면서 ‘정치계의 거인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다.’로 태도를 싹 바꾸었다. 그를 병적으로 난도질하던(그 후로도 오래도록) ㅈ일보까지 그의 행적을 칭송하며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며 이별의 노래를 불러대었다. 늙은 정치인의 쓸쓸한 뒷모습이 눈시울을 적셨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가 다시 정계에 복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아무도 모르게 땅속에 파묻어놓았다.

4년 뒤, 그가 실제로 돌아왔고 다시 그니의 반대파와 각다귀떼 언론들이 혐오적으로 갉아대기 시작했다. 민주화와 남북소통 동아리들이 그를 결사적으로 지지했고 지난한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마침내 불가능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그의 엄청난 몸의 가치를 새롭게 점검했다.

그 무시무시한 탄압과 고초 속에서 수십 년간 조직과 사람의 맥을 점검하면서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그는 인간 승리의 정점이었다. 어려움과 희망을 총괄하면서 IMF 환란의 위기를 넘겼고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가장 명징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 대통령이 되었다. 닫힌 철조망 사이로 무우꽃 배추꽃 화사한 빛깔들이 노랗고 파랗게 피어올랐다. 어쩌면 행복의 세상이 도래할지 모른다며 몰래 설레기도 했다.

쏜살같은 세월을 보내면서 우리들은 장년을 맞이하며 서리 내린 머리칼 쓰다듬으며 여전히 책을 읽고 술을 마시는 중이다. 그 사이에도 푸들 펜대들은 민주화의 맨살을 닥치는 대로 물고 뜯으며 좌충우돌 활약을 했다. 진보를 때렸고 특히 김대중을 향하여 마치 콤플렉스 입자들처럼 마지막까지 쥐어뜯었다. 이제 그니의 몸 반조각과 함께 두 망자들은 까마득히 지상을 굽어보는 중이다. 그리고 헤어지기 위해 모인 인파를 보며 ‘느이들은 살아있다고 우느냐며 껄껄대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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