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스물아홉의 소설가 지망생 애자. 학창시절 ‘부산의 톨스토이’로 불렸던 ‘글발’로 언젠가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빚은 산더미이고, 바람피우다 걸린 남자친구 때문에 속 끓이기 바쁜 게 현실. 무엇보다 애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잔소리꾼 부산 사는 엄마다. 자신이 사고뭉치 딸인 건 생각도 않고 엄마에게 지겨움을 토로하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졌다.
1. 박애자는 깡이 세다.
깻잎머리 고교시절. 점심시간 친구들과 볶음밥을 해먹으러 가져온 부탄가스통이 주임교사에게 걸리고 말았다. 나무라는 선생님 앞에서 눈 하나 꿈쩍 않는 애자. 아예 보란 듯이 가스를 불어버린다. 그리곤 주임교사 자동차의 사이드미러를 발로 차 부숴버린다.
“가만있으면 빙신으로 알 꺼 아니가.”
드센 애자를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사람이 있으니 역시 ‘한 성격’하는 엄마 최영희 여사. 뒷덜미를 낚아채는 최 여사의 억센 손아귀엔 애자의 ‘똘끼’도 기가 죽는다. 그 억센 손아귀가 없었다면 애자의 고교 졸업장도 없었을 거다.
2 박애자는 엄마의 잔소리가 싫다.
과속방지턱처럼 덜컹이는 스물아홉 나이. 애자와 최 여사의 싸움은 항상 최 여사의 한방지르기로 시작된다.
“취직도 싫다. 결혼도 안 한다. 그럼 뭐 먹고 살긴데!”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이래라 저래라고.”
“고마해라.”
“와 고만하는데. 끝까지 해라. 내가 이래서 집에 오기 싫은 거다!”
“그럼 나가. 이년아.”
“내가 나가라면 못 갈 줄 아나?”
나간다고 짐을 챙기면서 엄마의 비싼 화장품을 슬쩍 챙기는 애자. 집밖으로 뛰쳐나가는 딸의 꽁무니에 대고 엄마는 소리를 지른다.
“김치 가져가. 이년아.”
‘애자’에는 대단한 굴곡점이나 반전이 없다. 있다면 엄마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 대목 정도다. 그럼에도 밋밋하지 않다. 때론 자매 같고 때론 철천지원수 같은 모녀관계. 그 불가사의한 모녀관계를 아주 섬세하게 풀어낸 덕분이다. 대사 한 마디, 표정 하나가 알알이 실감난다.
전반부는 유머러스하고, 다가올 엄마의 부재가 점차 기정사실화되는 순간, 영화는 장중한 슬픔을 펼쳐 놓는다.
스크린도 울고 객석도 운다. 강요된 눈물이 아니다. 수술을 포기하려는 엄마에게 “나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해보고 그냥 보낼 수 없잖아”하고 울부짖는 장면도 있지만, 감정을 억지로 절제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모녀의 교감과 소통을 상징하는 단어, ‘깐따삐야 꼬쓰뿌라떼’가 나중에 애자의 성장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볼 땐 오히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눈물이 솟는 건 애자의 엄마가 아닌 관객들이 자신의 엄마를 유사체험하기 때문이다. 집나가는 딸의 뒤꽁무니에 대고 “김치 가져가”라고 걱정해주는 세상 유일한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는 가슴 뭉클한 깨달음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문자메시지라도 보내고 싶을 거다. “엄마 아프지 마. 내가 잘 할께.”
이 영화가 연출 데뷔작인 정기훈 감독은 “최강희는 선수고, 김영애는 귀신이다‘라는 말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애자’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 공은 오롯이 최강희와 김영애 두 배우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최강희는 깻잎머리 여고생부터 스물아홉의 나이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연기를 펼쳐 보인다. 실제로 퉁퉁 부은 눈이 진심을 전한다.
드라마 ‘황진이’ 이후 3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선 김영애의 연기가 완벽한 앙상블을 이룬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에서 “참 곱다”고 감탄하며 바라보는 김영애의 표정연기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역시 엄마는 그 이름만으로도 그 어떤 소재보다 큰 울림을 전하는가 보다. 많은 엄마와 딸들이 울게 생겼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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