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 낙화암을 지나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금강일대에 형성된 백사장은 꼭 한번 햇빛을 맞으며 맨발로 걸어 봄직한 곳이다.
강 건너 금강을 한 눈에 조망하고 있는 천정대(天政臺)에서 바라본 호암리 백사장은 내리쬐는 햇볕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그야말로 금모래빛을 발하고 있다. 반짝이는 물빛과 어우러진 금빛 모래는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안정과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 김소월이 노래한 강변의 금모래빛이 바로 이와 같았으리라.
이곳 호암리 백사장은 부여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들어가는 강변에 자리한 덕에 그간 골재 채취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 백사장의 곱고 풍성한 모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할 뿐 아니라 흐르는 물의 자정작용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금강의 물길을 가로질러 부여와 청양을 잇는 교각 아래에서도 누군가 도화지에 장난을 쳐 놓은 것 마냥 아기자기한 모래톱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 금강에서는 갈대와 버드나무 같은 것들이 솟아 있는 강 한 가운데 크고 작은 섬처럼 펼쳐져 있다. 이 하중도는 하천에서 식생 군락을 형성해 새들의 쉼터이자 뭇 생명들의 서식처를 제공한다.
▲하중도, 모래톱...강물이 스스로 빚어낸 자연의 모습
자연스런 강물의 흐름은 다양한 하천의 모습을 연출한다. 오랜 세월 물길을 바꿔가며 퇴적과 침식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넓은 둔치와 하중도를 만들어낸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소와 여울, 모래톱은 지루하지 않은 경관을 연출하는 동시에 하천의 자정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자연스런 하천의 물리적 환경은 부여를 지나 공주에 이르는 구간에서 쉽게 목격된다. 금강변을 따라 부여와 공주를 잇는 백제큰길이 나기 전까지 이 구간은 사실상 접근이 어려워 인간의 손이 덜 미친 곳이었다. 덕분에 이곳은 금강 하류에서 그나마 아름다운 하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강을 따라 뻥 뚫린 도로가 지나고 강 건너에도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부장은 “백제큰길을 따라 공주에서 부여로 흐르는 금강은 그래도 지금까지는 자연형 하천의 형태를 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며 “과연 얼마나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각종 오염원
강은 본래 스스로를 정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인간의 과욕이 하천의 자정능력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수질 정화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일도 없을 것이다. 최소한 강을 있는 그대로 놓아 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둑을 쌓고 제방을 막아 강물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한다. 또 물길을 막아 자꾸만 흐르는 물을 가둬두고, 그 자정능력 이상의 오염원을 방치한다.
부여에서 공주에 이르는 금강 둔치에 자리잡은 하천 경작지도 그 동안 하천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한 오염원의 하나로 지적돼 왔다. 실제 세도면을 비롯한 부여군 일대 금강 둔치에는 이곳이 본래 농경지인지 하천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빼곡히 하우스 단지가 들어서 있다. 부여군에서만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1260만 8700여 ㎡ 의 하천 경작지에서 1000여 농가가 방울토마토와 수박 등을 재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단체는 그 동안 이러한 무분별한 둔치 경작이 비점오염원 유입으로 금강의 수질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그러나 경작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와 연결돼 실마리를 찾기 어려웠던 이 문제는 최근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단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보상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농민들과의 협의 과정을 거쳐 연내 보상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 밖에도 하수처리 시설 부족과 강으로 흘러드는 각종 쓰레기, 불법 어로 행위 등도 여전히 강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오염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둬진 물에 사라질 하천의 모습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위협은 무분별한 개발 행위와 인위적인 하천 형태의 변화가 될 수 밖에 없다. 공주 시내를 관통해 백제큰길을 따라 부여로 흘러드는 구간의 금강은 그 바로 위, 아래와 대조적인 모습을 띤다. 아래로는 하구둑에 막힌 담수의 영향으로, 또 위쪽은 보의 영향으로 많은 수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밀조밀한 하천의 경관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공주시내로 흘러드는 금강의 물줄기는 취수보가 자리한 공주대교 아래까지는 한층 넓어진 하폭을 드러낸다. 물이 가득 차 언뜻 그럴듯한 강의 모습을 보이지만 부여로 향하는 그 아래 하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취수보 바로 위쪽에 유일하게 거대한 하중도가 형성돼 있는데 이곳이 유일하게 생명체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이경호 부장은 “정확한 생태 조사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공주대교 인근의 하중도는 생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만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머지 않아 공주와 부여 일대를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는 모두 이곳과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강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공주에서 부여에 이르는 구간에 2개의 보가 생길 예정이며, 정부는 이를 통해 물이 가득 들어찬 금강의 모습을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금강의 물줄기는 보에 가로 막혀 흐름을 방해받게 되고, 자연스레 빚어내던 하천의 다양한 모습도 상당 부분 잃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수상레포츠가 가능한 친수 공간이 확보될 지는 모르지만, 하천의 자정 능력을 키우던 섬과 모래톱은 사라져 갈 것이다. /글=이종섭ㆍ사진=김상구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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