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도공의 후예, 日도자기 역사 주인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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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요산책> 11. 심수관의 남원성 순례

  • 승인 2009-09-07 20:15
  • 신문게재 2009-09-08 12면
  • 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
“송충이 때문에 시들었죠.” 심 씨는 ‘교꾸장구우’로 가는 산길에서 주변의 소나무를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원래는 울창했는데 지금은 성글어서 햇볕이 오솔길을 비춰주고 있다. 변한 것은 심 씨가 그리던 남원성도 그랬다. 성벽에 둘러싸인 높다란 망루는 하늘을 찌르고 있어 고려 풍 도성(都城)을 상상했던 남원성은 의외로 성벽이 낮았다.

여수에서 기차로 찾아간 남원은 번화한 상업도시였고 사람들 틈에 끼어 걸어야했다. 다만 임란 때 한 지휘관이 적을 막자던 그 산만이 꿈속의 남원성 밖 풍경과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을 뿐이다. 심 씨는 곤혹을 느꼈다. 이곳이 선조의 고향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그렇게도 귀한 도토(陶土)가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것이 심 씨를 놀라게 했다. 이 흙을 빚어 평화롭게 살아가던 거리가 서기 1597년 여름 성벽을 방패삼아 격전을 벌여 5만의 조선군은 2천으로 줄어든 것이다. 8월 15일 보름달 아래 많은 군사가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어떻든 그곳 남원사람들은 심 씨를 환영했다.

한 노인이 심 씨를 위해 남원성 경관(景觀)을 사료(史料)에 의해 재현해보였다. 그 얘기를 듣던 심 씨 귀에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에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심 씨는 어느 새 남원성 북쪽을 걷고 있었다. 거기 작은 시내가 보였다. 시냇가에는 돌로 쌓아올린 높이 10미터 가량의 성터가 남아 있다.

성터는 풍화(風化)해서 검은 빛으로 변하고 여기저기 돌부리에 엉킨 개나리가 시냇물 위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이것이 옛 남원성 성터의 일부지요, 흔적이라고는 이것뿐입니다.” 노인의 설명이었다. 심 씨는 시냇가에 몸을 굽혀 안경을 벗고 얼굴을 씻었다. 이야기는 다시 ‘미노야마(美山)’로 돌아온다.

▲ 玉山宮은 조선식 건물
‘교꾸장구우’는 단순한 신사였다. 간소하게 만든 배전(拜殿) 겸 무대 같은 건물 뒤에 본전(本殿)이 있다. 배전의 네 기둥 사이로 산바람이 불면 그대로 지나간다. 배전은 ‘에마도오(繒馬堂 . 소원을 빌고 또 소원 성취한 사례를 액자로 헌납한 곳)’를 겸하고 있어 마을의 소학생 붓글씨도 액자로 걸려 있다.

▲ 필자가 방문했을 때의 도공 심수관 부처(美の山)
▲ 필자가 방문했을 때의 도공 심수관 부처(美の山)
‘신주남자(神州男子)’라는 글이 눈에 띈다. 그 액자 밑에서 신관(神官) ‘마쯔다’ 씨는 이것저것 제구(祭具)를 보여주었다. 마쯔다 씨는 “지금 생각하면 유감천만입니다. ‘다이쇼오(大正)’ 6년 개축 때 일본식 신사로 바꾸었습니다만 이전에는 조선식 묘(廟) 건축이었죠.”했다.

‘땡~’ ‘마쯔다’ 씨가 거기 있는 징을 때렸다. 그의 앞에는 다른 악기도 있다. 장구, 북을 ‘마쯔다’ 씨는 양손에 든 채 재빨리 두들겨 나갔다. 4절(節) 씩 되풀이되는 그 소리는 ‘뚱~딱, 뚱~딱, 뚱따닥’ 이렇게 들렸다. 제사 때는 제비를 뽑아 맞춘 사람을 신(神)으로 모신다고 했다.

신은 한국식 비단 예복에 관을 쓰고 용(龍) 무늬의 베 깃발을 들고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 사람들은 길가 도랑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이를 맞이한다. 말하자면 화석(化石)과도 같은 제사 풍습은 그들의 고국 한국에서는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 ‘시바’ 일행은 신관의 집까지 내려왔다. 그 집은 대지(臺地) 끝에 있다.

그 앞은 끝없는 보리밭이다. 하늘과 땅이 넓고 밝아 신들이 노니는 뜰로는 그 이상 더 좋은 곳이 없을 것 같다. 이 산 위에 한신(韓神) 묘에 ‘교토’의 ‘기온(祗園)’ ‘야사까신사(八板神社)’가 해마다 회합의 초대를 보내온다고 한다.

‘야사까신사’는 전국에 7천 개쯤 있다. 신주(神主)는 ‘스사노오미꼬또’(素盞鳴尊 . 일본 신화 속의 신)로 天照大神의 남동생이다. ‘미코토’는 ‘이즈모(出雲 . 島根縣의 東部)’에 살았으나 어쩌면 한(韓)나라 신라(新羅)가 고향이었는지 신라의 ‘소시모리(曾尸茂梨)’에 살면서 두 나라 사이를 왕래했다고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적고 있다.

고대 왜국으로 건너온 한인들도 이 신(神)을 모셨는지 모른다. ‘쿄오토’의 ‘야사까신사’ 역시 ‘사쯔마’의 것은 아닐까. ‘소시모리’라는 일본서기 ‘가미요(神代)’ 편에 기록된 한국 지명은 경상북도 경주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얘기를 ‘마쯔다’ 씨와 나누고 있는데 심 수관 씨가 경상북도 산과 냇물의 부드러움을 소개했다.

이때 종달새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종달새는 높은 하늘에서 지저귀기 시작했다. ‘시바’ 씨는 심 씨의 이번 여행이 경상북도까지 포함된 것을 처음 알았다. “경주인가요?” 물으니 “아니 청송(靑松)입니다.” 작가 ‘시바’는 청송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다.

▲ 沈 씨 관향 靑松을 방문

‘시바’가 집에 돌아와 지도를 펼쳐보니 청송은 일본해(日本海)에 가장 가깝고 성밖을 낙동강 지류(支流), 반변천(半邊天)이 흐르고 있다. 도성(都城)은 태백산맥 중간에 위치하고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추측컨대 상업은 발달하지 못 한 농림지대 고을이리라. 산에는 도토(陶土)가 나고 많은 도공(陶工)이 살고 있었다.

▲ 12대 심수관 作
▲ 12대 심수관 作
심 수관 씨 말에 ‘시바’는 깜짝 놀랐다. 그 청송이야말로 심 씨 발상지(發祥)라는 것이다. 심 씨의 먼 선조가 청송에서 그릇을 구웠고 언제부터인가 청송에서 나와 심 씨 일족의 기구한 운명을 만든 남원 땅에 옮겨왔다고 한다. 청송에는 심 씨 성이 많다.

예전부터 전해오는 이 말은 심 씨가 어릴 때부터 귀에 배어있다. 청송에는 심 씨 조상 무덤이 있다고 했다. 심 씨가 방한 길에 청송에 간다고 하자 관방장관이 미리 현지에 연락을 취해 주었다. 청송에 닿아 심 씨가 놀란 것은 마을 어구에 4세기 전까지 한 집안이었을 많은 사람들이 영접에 나선 것이다.

그들은 심 씨를 둘러싸고 놓아주지 않았다. 심 씨를 마치 오랜 만에 고향에 돌아온 친척처럼 대접해주었다. 이튿날 아침 성 밖 산 위에 올랐다. 심 씨는 심 씨 집안의 분묘가 있는 산의 모습은 사쯔마 ‘교꾸장구우’의 산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숨이 찼다. 이윽고 산 위 묘소 앞에 다다랐다. 이끼를 털고 제물을 바치고 절을 하려 하자 “한국식 절이 아니면 혼령에게 통하지 않아요.” 심 씨 성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심 수관 씨에게 유교식 절을 가르쳤다. 배례가 끝나 얼굴을 들자 그들은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기까지 가보실까요?” 심 수관 씨는 ‘시바’ 씨를 부지(敷地) 끝까지 데려갔다. 골짜기 너머로 잡목림이 있다. 그 오른 편 나무 저편에 “보이지요?”하고 심 수관 씨가 ‘시바’를 돌아보았다. 바다가 보인다는 것이다. “번쩍거리지요?”하고 심 씨가 재차 물었으나 구름이 많아 구름 빛깔에 흘려 ‘시바’의 눈엔 보여야 할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심 씨 눈에는 그것이 똑똑히 보이는가보다. 그 바닷가에 표착한 심 씨 조상들은 음력 8월 보름, 달 밝은 밤이 되면 해마다 이 산에 올라 나무 사이에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오늘이소’를 부르고 그 바닷길 저 멀리 고국산천을 향해 망향의 기도를 올리며 성묘를 대신했다.

그 성묘를 4세기가 지난 14대 심 수관 씨가 이룩했다. 경상북도 청송, 분묘가 있는 산에서 한 노인이 심 씨를 전망이 트인 곳으로 데려가서 ‘사람에게도 운명의 상(相)이 있듯이 묘지에도 그 일족을 운명지우는 묘상(墓相)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이 심 씨 댁 묘상을 점쳐 드리리다.”하면서 약간의 절차를 밟은 뒤 등 뒤에 높은 산이 있고 양편에 낮은 산을 거느리고 한 쪽만이 하늘을 향해 활짝 트였으니 “이런 묘상은 자손이 외지(外地)에 나가 번영할 상(相 )이라고 노인은 말했다.

그 탁 트인 하늘 아래 5백년 쯤 묵은 큰 소나무가 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산 위의 바람은 차가왔고 소나무가지는 끊임없이 울어댔다. 심 씨는 몹시 추웠다. 벌써 12월이다. ▲ 이번 회로 ‘사츠마’ 도요 중심에 서왔던 심 수관 일가의 가계(家系)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다음 회는 ‘아리타(有田) 도요의 이 삼평 편이다.

▲ 이제는 15대 수관 시대
초대 심 당길로부터 14대 수관에 이르는 ‘사츠마’ 도요사…. 심 씨 가문이 널리 알려진 것은 12대 수관(세습)이었다. 그는 세계박람회에 출품 입상한 경력이 있다. 또 13대를 거쳐 14대 수관에 이르러선 ‘고젠구로’를 구워내 일약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14대는 이제 80을 뛰어 넘은 황혼 인생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건장하다. 그는 한국정부로부터 명예 대사 직함을 받고 활약 중에 있다. 그의 지명도는 한 . 일 정상회담 때 배석할 정도였으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과 전 ‘오부치(小淵惠三)’ 총리의 ‘가고지마’ 정상회담 때 배석했다.

‘오부치’ 총리와 심 씨는 와세다 정경학부 동문이다. 젊었을 때 주변에선 심 씨에게 정치를 권유한 일이 있었지만 그는 마다했다. 가업인 도자기 굽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외모부터가 조선인 골격을 닮고 있다. 선이 굵고 늠름한데다 유머까지 즐길 줄 아는 인품이다.

바꿔 말하면 가장 ‘사츠마’인 다운 그런 풍모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90년 상처를 하고 나서 오늘날엔 적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80년대 초 필자와 인터뷰 과정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14대 수관이고 자식 놈(一輝)은 15대 수관이지요.』 세습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파 앞에선 어찌 할 수 없는 모양인가…. 풍문이지만 15대는 14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14대 심 씨는 관향 청송(靑松)이나 남원성에서 볼모로 잡혀온 조상이야기를 할 때는 울먹인다. 그러나 15대는 남원성이나 청송에는 큰 관심이 없고 그가 들렸던 일이 있는 이천(利川) 도요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조상들이 애용하던 망건, 교린수칙(예절) 책을 필자에게 내보이며 울먹이던 14대 수관이었다. 그가 한 번은 신문사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심 수관 한국역사기행』이라 해서 ‘버스’ 한 대가 들이닥쳤다. 유머를 곧잘 들고 나오던 14대 수관 씨. 지금 쯤 노을을 바라보며 도토를 주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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