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윤 건양대학교 대학원장.병원관리학과 교수 |
일본이 이렇게 된 것은 고이즈미 정권 이후 미국식 초 경쟁주의 내지는 능력주의가 이식된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일본인들에게도 자신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시나브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일본을 지탱하고 발전시켜온 나눔의 정신과 이타적 가치관은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으며, 일본의 조야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와 같은 분위기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민들의 근심과 걱정은 아랑곳없이 자민당 정권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두 축은 미국과 일본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역사 앞에서조차 오만했다. 과거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큰 고통을 받은 주변국의 반발을 비웃는 듯 일부 권력자들의 신사참배는 계속되었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는 국제사회의 권고도 무시했다. 자민당 정권은 안팎으로 인심을 잃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마침 2008년 미국에서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침체된 일본 정계와 경제계에 직격탄을 날린 격이 되었다. 세계 소비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던 일본 경제는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그 사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개발논리로 경제를 부흥시킨 중국은 짧은 시간에 세계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해버렸다. 일본 국민들은 실질소득이 감소하여 살림살이가 힘들어진 것은 물론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 이 모든 상황 전개의 책임이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결국 일본 내에서는 자민당을 벌줘야 한다는 판단이 비등하게 되었고 그것은 반대투표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앞길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평등경제의 신화가 깨지고 능력 없는 사람들은 잘 살 가치도 없다는 이기주의 가치관이 일본 사회에 파고들면서 전통 정신과 질서가 뒤죽박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비로 일컬어지던 종신고용 시스템도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비정규직의 숫자는 전체 근로자의 33%를 넘어섰다. 이들은 자신들의 살길을 찾거나 또는 정체성 확립을 위해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멀쩡한 근로자들이 하루아침에 노숙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뜻이다.
급기야 경제대국 일본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징후들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백주대낮에 동경 시내 한복판에서 칼부림이 일어나고 인도로 차를 돌진시키는가 하면, 공산주의 신봉자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경제평등 사상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성실히 일하면서 보통의 생활을 보장받던 일본인들이 삶의 방향을 잃고 있다는 증거다.
이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초 경쟁주의는 일본인들에게 일종의 재앙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재앙은 자민당이 침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역사의 변곡점이 된 이번 정권교체로 확실히 일본의 정신은 시험대에 올랐다. 전통적인 평등의 경제시스템으로 회귀를 할지, 아니면 초 경쟁주의 체제에 적응을 해나갈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주변국이나 경쟁 기업들에게는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상대적 침체와 정치적 혼돈이 우리에게는 과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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