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벗어던지고 싶은 가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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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벗어던지고 싶은 가면들

  • 승인 2009-09-02 19:06
  • 신문게재 2009-09-03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가면무도회에서는 부끄럼 타는 선남선녀들도 스스럼없이 즐긴다. 도깨비탈이라도 쓰면 거칠 것 없이 대담해지는 걸 보라. 멕시코에선 신종플루로 너도나도 마스크를 착용하자 복면강도 검거에 애먹은 일이 실제 있었다. 마스크와 복면의 용처는 다기능이라 할 만큼 많다. 심리적 허약함, 부끄러움을 없애주는 기능도 물론 그 하나.


프랑스에서는 시위 중 복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우리도 복면 뒤에 숨은 비겁한 폭력을 막는다고 `복면금지법'을 발의했었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식으로는, 옷 입기는 타자와의 관계에 자기를 개입시키는 기호행위다. 그의 `모드의 체계'로 마스크와 복면 착용도 유사한 기호행위 아닐까.

얼굴을 가린 이슬람권 여성들을 볼 때마다 `강요된 기호행위'라는 용어를 만들어 붙이고 싶다. 남편, 아버지, 시아버지, 아들, 남편의 형제, 여자 종, 성적 욕망이 없는 남자 종, 여인의 정을 모르는 어린아이 이외의 사람들 앞에서 신체를 드러내지 말라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가리는 양상은 같은 듯 다르다. 머리만 가리는 히바브, 전신을 가리고 눈 주위는 망사로 덮는 부르카, 머리를 싸고 눈 주위만 가리는 니카브, 전신을 가리고 얼굴은 드러낸 차도르,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는 키마르 등등. 또 곳에 따라 히잡, 아바야, 부이부이처럼 명칭도 많고 가림의 수위가 다르다. 아프가니스탄에 가면 통자루 같은 걸 온통 뒤집어쓰고 요르단, 레바논은 머리카락만 가린다.

필자 주관의 비교 분석으로는 차도르가 옛날 우리 쓰개치마를 연상시킨다. 얼굴과 머리를 둘러 어깨까지 늘어뜨린 너울(나올·羅兀)은 키마르 쯤 된다. 너울에 말군(저고리 위에 덮어 매는 덮치마)을 이으면 장옷이다. 장옷은 눈가리개만 뺀 부르카에 가깝다. 짧은 머리쓰개 `천의'는 히바브의 변형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귀·눈·입·코와 목까지 덮은 스타워즈 복면의 여성 산책객들을 자주 만난다. 종교적인 이유도, 복고주의나 신비주의도 아니면서 그렇게 얼굴을 철저히 가리면 남편도 몰라보겠다. 인적 드문 곳에서 마주쳐 기겁했다는 노인분도 봤다. 기미, 주근깨 생성 막으려고 맑은 공기를 포기한 패션이다. 복면 같은 마스크, 이것도 기호행위라면 기호행위다.

원치 않은 기호행위도 있다. 신종플루 예방용으로 쓰는 마스크 착용이 그러하리라 본다. 국제공예비엔날레를 앞둔 청주에서는 마스크를 100만개나 사서 관람객들에게 나눠줄 것이라 한다. 예산 옛이야기 축제, 태안 국제철인3종경기의 전격 취소, 서천 전어축제 연기는 마스크 값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사 기획자들은 이래저래 골머리 앓기 일쑤다.

여기에 걱정총량의 법칙이란 게 적용된다. 평생 할 걱정의 양이 한정돼 있다는 것. 무인도 표류자의 걱정은 어떻게 살아서 나갈지에 100% 집중된다. 어찌어찌 무인도를 빠져나왔다. 분산된 걱정거리가 줄 서 기다린다. 아내가 달아나고 `민증'이 말소됐을지도 모른다. 걱정총량은 다시 100%다.

신종플루 걱정도 플러스-마이너스로 제로섬이 되어 여타의 걱정이 줄어들 수는 있겠다. 하지만 과거는 벌써 지났고 미래는 아직 안 왔다고 낙관할 처지가 아니다. 10월, 11월 대유행설이 `설(說)'로 스러지길 바라지만 사실상 `유행 단계'에 진입했다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마스크나 복면을 안 쓰면 비정상으로 보이는 상황은 절대 오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 확 쏠린다./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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