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윤]나는 소규모 학교의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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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나는 소규모 학교의 교사이다

[교육단상]김종윤 부여 장암중 교사

  • 승인 2009-09-01 19:43
  • 신문게재 2009-09-02 20면
  • 김종윤 부여 장암중 교사김종윤 부여 장암중 교사
 2교시, 기술·가정 실습시간이다. 똘망똘망한 아홉 눈동자가 목재를 자르고 직각을 재며 마름질을 한다. 2층 유리창 위로 훌쩍 자란 은행나무가 가지마다 열매를 달았다. 은행알들이 아이들 눈동자처럼 동그란 눈을 굴리며 실습을 참관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물체를 디자인해서 지도조언을 받은 후 자기만의 성과물을 위해 실습에 열중한다. 완성한 물체는 간단한 설명서와 함께 작품전시를 할 계획이다.

▲ 김종윤 부여 장암중 교사
▲ 김종윤 부여 장암중 교사
 나는 소규모 학교 교사이다. 충남의 교육 여건상 소규모 학교가 많이 있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수가 40명 미만이니 소규모 중에서도 과소규모 학교이다. 지난해 금산에서 근무를 마치고 이곳 부여의 작은 학교 정문을 들어설 때는 심정이 참 복잡했었다. 낯설고 어색하고 걸음이 무거웠다. 대전에서의 출퇴근이 무리라서 학교 정문 옆 작은 관사에 짐을 풀었다. 첫날 밤, 거울을 보면서 긍정적 자기 예언을 했다.

 학교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샘물처럼 맑은 아이들 때문이다. 평소와 억양이 다른 한 마디의 말로 자세를 고치는 아이들, 일년 동안 “솔직하게 말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 학생수는 적지만 마음속에는 무엇인가 되고 싶은 꿈을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 아이들, 참 소중한 아이들.

 일과 중에 간혹 아파서 병원에 가거나 조퇴를 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운전수 노릇을 해야 한다. 학교 앞을 지나 마을로 가는 버스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일년을 그러다보니 마을 위치는 물론 아이들의 집까지 익숙하게 되었다. 강둑 너머 퇴적지와 바둑판처럼 넓고 고른 들에 비닐하우스가 끝없고 비닐하우스 이랑마다 딸기와 수박이 한창이다. “선생님, 저것이 다 우리 일거리예요. 밭이 미끄러워서 수박 나르기가 정말 힘들어요.” 한마디만으로 아이들의 수고를 알겠다.

 여름방학에는 4주 동안 보충학습을 하였다. 교과보충지도를 하고 점심식사 후에는 영화 관람과 특기·적성지도, 대학생 멘토를 통한 수준별 학습지도를 하였다. 무의미하게 긴 방학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보충학습기회와 좋아하는 분야를 계발시켜주자는 의도로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점심식사였다. 교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스스로 점심을 해결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들을 통해 쌀을 걷고 반찬을 샀다. 아이들이 역할을 정하여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식사 후 설거지를 하였다. 소문이 퍼지면서 학부모들이 국을 끓여오고 밑반찬을 해 와서 한결 수월하였다. 소규모 학교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소규모 학교의 교사이다. 아이들의 가족수를 모두 알고 논과 밭이 있는 곳을 알고 수업시간에 졸면 왜 조는지를 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교사가 아닌 부모라는 생각을 하고 줄을 세운 아이들의 앞이 아니라 나도 하나의 줄이 되어서 함께 섞인다. 그 씨실과 날실의 결합으로 알차고 촘촘한 꿈을 함께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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