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100년 가까이 인생을 산 어른에게서 그것도 한 평생 학문에 몰두한 어른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큰 행운이다.
이 책의 저자 지센린은 1911년생으로 올해 98세로 중국에서 ‘나라의 스승’이란 칭호를 받을 정도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원로학자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숙부 밑에서 공부를 시작해, 고등학교 때 여러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번역활동을 할 정도로 학문에 관심이 많았고, 칭화대 서양문학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인도 고대언어를 공부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5년 중국으로 귀국후엔 베이징대에 동방학부를 처음 개설했고, 수 많은 활동을 전개했다. 문화대혁명 당시, 학내정치투쟁에 휘말려 강제노동, ‘우붕’ 등의 수감생활을 하면서 방대한 양의 <라마야나>를 번역했고, 문혁이 종결된 지 16년이 지나서야 <우봉잡억>을 펴내면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집단적 광기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한편, 자신을 핍박한 이들에 대한 복수심을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킨 지센린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윈자바오 총리, 리자오싱 전외교부장등 제자로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자주 병문안하고 있으며 지센린의 고향 산둥성 린칭시에는 지센린 자료관이 건립되어있다.
노환과 지병으로 병상에 있는 지금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집필하고 있다. 100세를 앞둔 노학자는 잘 사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평정심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대하며, 독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남과 적절히 어울린다. 또한 학문을 할 때는 자신을 가두지 말고 천천히 그러나 항상 나아가며, 노년에게는 늙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게으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아주 평범한 말인것 같으면서도 이 말을 잘 되새기면 엄청난 내공이 담긴 말임을 알수 있다.
《다 지나간다》는 바로 지셴린이 그동안 발표한 단편 산문들 가운데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 글들을 가려뽑은 에세이집으로, 100세 가까운 인생을 살아온 저자가 가슴 깊이 길어올린 사색과 명상이 담겨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중국 최대 온라인서점 당당왕 베스트셀러 순위 자리를 64주 넘게 지키는 등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독자 리뷰를 살펴보면 우리 시대 가장 필요한 ‘인생 교과서’로 늘 곁에 두고 봐야 할 책이라는 평이 가장 많다.
그의 인생관 역시 남다르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한가할 때나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늘 우리 인생은 수동적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태어날지 미리 계획을 세운 뒤에 태어나, 그 계획을 착착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모른 채 성장하며, 때로는 영문도 모른 채 요절하기도 한다.
난 우리가 이렇게 수동적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뜻하고 맛 있는 음식을 든든히 먹은 다음에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른 후, 또는 골프장에서 후련한 삿을 날린 후, 자신에게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에게 이런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개운해지고, 눈앞이 밝아지며, 앞을 가리고 있던 희뿌연 안개가 조금은 걷힐 것이다.
“인생 백 년 사는 동안
하루하루가 작은 문제들의 연속이었네.
제일 좋은 방법은 내버려두는 것.
그저 가을바람 불어 귓가를 스칠 때까지 기다리세.”
경제적·정신적 패닉에 빠져 어둑어둑한 길을 홀로 걷고 있는 듯한 요즘 현대인들에게 지셴린은 말한다. 영국 시인 셸리의 말처럼 “겨울이 왔다면 봄 또한 멀지 않다”고. “겨울이라 잎사귀는 모두 떨어졌지만, 새 움이 나뭇가지 안에 잔뜩 웅크린 채 봄날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아흔아홉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당신도 봄날의 꿈을 꾸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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