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배 선생님은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상명대학 만화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시고, 대전지역을 오가며 교육과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미술의 새로운 소통매체에 대해 고민하면서 만화와 회화의 접점을 모색했다. 당시 화가로서는 드물게 만화에 관심을 보이며, 미술과 만화의 결합형식인 이코노텍스트(iconotexte), 文과 畵의 합성형식인 만화를 주제로 삼아 첫 전시를 마치고, 어느 더운 여름날 늦은 밤 교통사고로 불현듯 좋아하는 지인들을 뒤로하고 유명을 달리하신지 올 해가 꼬박 십년 째이다. 아직도 유독 고인의 굵고 부드러운 톤의 음성과 털털한 웃음이 눈에 선하다. 지금도 기억되는 그분은 참 따뜻한 분이셨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창틀의 프레임, 의자, 익명의 인물들이 특징적이었는데, 이번에 동료들이 마련한 화비(畵碑·사진)에는 고인의 작품, “의자” 이미지를 돌 앞면에 새기고 그 뒷면에 “의자, 倚子 chair - 편히 쉼 rest“ 라고 간단히 쓰여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 화가의 화비를 제작한 일은 비단 몇몇 미술인들에게 한정된 의미나 문제를 넘어선다. 그동안 대전지역미술계의 상황을 점검해 볼 때, 대전미술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대전지역미술의 정체성이나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층도 빈약하지만 지역미술을 단지 기록으로만 해결하려는 것도 문제이다. 지역미술계를 열어갔던 미술인들의 발자취를 직접 찾아간다는 것은 어느 특정인의 미술인 상을 제정하거나 한 두 번의 전시를 해 주는 것 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다. 지역의 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해 가기 위해서는 한 두 번의 개별적인 작품에 대한 기술 이상의 문화적인 토대가 이루어져야한다고 본다.
몇 해 전 학생들과 함께 대전미술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기행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대전미술의 씨를 뿌린 분들의 생가나 그 활동무대가 되었던 곳을 찾아보았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너무도 허무했던 마음은 아직도 선명하다. 건축물이나 작품만이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생생한 문화예술에 대한 체험과 교육이 함께 할 때 비로소 문화유산은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된다.
미술 분야에 비해 문학 쪽은 그래도 형편이 낳은 편이라 생각된다. 대전의 몇 군데에는 시비詩碑가 세워져있고 시인의 생가를 나타내는 표지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대전미술계에는 첫 이정표가 될 김영배 작가의 10주년 추모식에 화비를 제작한 동료들의 추모식은 그들만의 기념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단지 몇몇 지인들이 살아생전의 동료 모습을 기억하고자 하는 추모의 의미를 떠나 한 화가가 지역예술가로서 기억되어 한 지역의 미술 분야에 대한 공적을 기리고 지역민에게 문화적 유산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화비는 분명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큰 의미로 기록될 것이다. 대전미술50년사에 화비로 되살아 올 화가는 또 얼마나 될까? 많은 작가들의 화비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남대 문화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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