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철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
WHO에서는 올 겨울 아시아지역의 대량 감염을 우려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WHO가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 국가로 분류하고 있을 정도로 우수한 국가방역체계를 갖추고 있고, 국민 보건의식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그렇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2일 처음으로 신종 인플루엔자 확진환자가 발생한 후 4개월 만에 세 명의 사망환자가 나왔고, 확진 환자 수도 4000명을 넘어서는 등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건국 60주년 기념사에서 `안전선진국' 만들기를 천명했다. 질병, 자연재해, 산업, 교통, 식품, 일상생활 등 모든 분야의 국가안전망을 구축하고, 안전사고예방의 기반을 마련해 안전선진국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정책이다. `안전선진국 만들기'는 사회 안전인프라를 구축하는 정부의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개개인의 안전의식을 높이고 생활화하는 것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설마?” 하는 안일한 태도와 대처로 인명과 재산을 잃어야만 했던 인재(人災)를 수 없이 많이 봐오질 않았는가!
전염병은 국가의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전염병관리체계도 중요하겠지만 이와 함께 개인의 책임과 의무 또한 큰 질병이다. 자기 스스로의 목숨을 지킬 수 없게 될뿐더러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는 점에서 개인이 철저한 예방과 성실한 치료를 공동운명체적 사명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희망은 늘 절망 속에서 더 또렷이 떠오르게 돼 있다. 국가와 개인의 노력이 피동적인 방어기재라면, 과학자의 연구 성과는 근원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스페인 독감 이후 지난 80년 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여왔다. 플레밍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연구하다가 1928년에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2005년에는 미국 캔자스 주립대 연구팀이 H1N1의 게놈을 밝혀냈다. 지금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4400개 아미노산 중 변이를 일으키고 있는 30여개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회결정론자들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데에는 개인의 능력이나 우연성보다는 사회의 환경적 요소가 그러한 발전을 유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하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로서 사회의 수요에 의해 과학 기술은 진보한다는 뜻이다. 사회결정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스와 조류인플루엔자에 이은 신종플루의 창궐은 과학자들의 연구 동기를 더욱 촉진시키는 사회적 환경요인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정복의 날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난치병은 언젠가는 극복될 잠정적인 가설'이라는 말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 줄 그 날을 과학자들의 피와 땀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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