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진과 빈, 어린 두 자매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남편 없이 고단한 삶을 꾸려가던 엄마는 시골 고모 집에 자매를 맡기고 아빠를 찾아 나선다. “돼지저금통이 가득차면 돌아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믿는 자매는 메뚜기를 구워 팔기도 하고 동전을 더 많이 넣으려 10원짜리로 바꾸기도 g나다. 그래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버려진 아이들. 어머니에게 버려지고 고모에게 버려지고 할머니에게 보내지는 자매를 보면서 다큐멘터리가 아니길 빌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무 없는 산’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이 영화는 현실적이다. 마지막 장면이 암전으로, 먹 스크린으로 바뀔 때 방울방울 듣던 낙숫물은 기어코 가슴에 구멍을 낸다. 먹먹하다.
엄마가 떠나간 빈자리, 아이들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픔을 간직한 채 자신들의 세계에서 힘겨운 투쟁을 한다. 이 아이들의 아픔을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가. 그냥 가만히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구구절절한 이야기로 동정심을 부추길 것인가. 재미교포 김소영 감독은 아주 차가운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으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화면 가득 아이들의 얼굴이 꽉 차는 순간,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 영화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아이들의 불행이 가슴을 저민다. 어른들의 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에게 강요될 때, 아이들이 얼마나 쉽게 삶의 잔혹함에 감응하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안타깝고 참담하다.
부끄럽다. 아이들이 버려지고 내쳐져도 눈도 꿈쩍 않는 세상, 아무런 사건도 되지 못하는 이 무심한 일상의 조각들이 아이들의 슬픔을 통해 낱낱이 고발된다. 어른들은 할 말을 잊을 것이다.
실제 로케이션과 연기 경험이 없는 아역 배우, 배경음도 없이 오로지 현장음만으로 리얼한 슬픔의 빛깔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할머니 집으로 와서야 아이들의 얼굴에 매달렸던 카메라는 비로소 기지개를 켠다. 확 넓어진 앵글은 자연 속에서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들의 시선이다.
자연에서 생명력을 발견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무한한 감동. ‘나무 없는 산’은 어린 두 아이의 여정을 통해 관객들의 가슴에서 그 원초적인 감동을 불러내는 수작(秀作)이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처럼 아이들은 절대 뿌리내릴 것 같지 않은 마른 나뭇가지를 손에 쥐곤 땅에 심고, 물을 주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척박한 현실일지라도, 그 아이들이 뿌리내렸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나무 없는 산’은 그렇게 관객들의 가슴을 큰 주먹으로 두드린다./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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