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8살 소녀 미셸 맥널리. 그녀는 짐승처럼 날뛰며 가족 또한 그녀를 짐승처럼 대한다. 그러던 미셸에게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교사’가 아니라 ‘마법사’라고 말하는 데브라지 사하이다. 사하이는 강인한 정신력과 집요한 노력으로 미셸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어디서 들은 듯 익숙한 이야기다. 그렇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다.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큰 병을 앓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 헬렌 켈러.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주위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는 짐승 같던 헬렌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친 사람이 설리번 선생님이다.
설리번이 헬렌의 손바닥에 물을 부어 물의 감촉을 느끼게 하곤 손바닥에 ‘water’라고 수백 번을 써주고, 헬렌의 손을 자신의 목과 입에 가져다대고는 입모양과 목의 떨림을 느끼게 해 ‘워터’라는 단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익히 아는 이야기다.
‘블랙’은 이 익숙한 19세기 미국의 감동실화를 거의 그대로 장소만 인도로 옮겨 재현한다.
헬렌의 이야기와 ‘블랙’이 갈라지는 지점은 선생님 사하이가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면서부터다. 미셸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자 사하이는 미셸에게 알리지 않은 채 그녀 곁을 떠난다. 미셸은 사하이 선생님을 애타게 수소문하는 한편 그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은 헬렌 켈러의 삶에 경의를 표하지만 초점을 미셸보다 사하이에 맞춘다. 단순한 인간승리 드라마에서 벗어나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말하려 애쓴다.
선생님이 남자인 것도 그래서다. 미셸의 장애와 사하이의 알츠하이머병, 상대방의 ‘어둠’에 환한 빛을 주려는 두 사람의 노력은 아가페적 사랑에 가깝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관계라 할지라도 남녀 간의 연정이라는 굴레는 예외가 아니다. 특히 미셸이 성숙해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에로스가 파고들 여지가 커진다.
‘블랙’은 이런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아시스’처럼 솔직담백하진 않지만, 미셸이 사하이에게 키스를 원하는 장면은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으로 이 영화가 가진 또 다른 미덕이라 할 만하다.
영화에서 미셸은 사하이가 자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 때문에 “스승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그 일이 있은 뒤 사하이가 떠나는 것은 알츠하이머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괴로움 때문은 아닐 것인가. ‘블랙’을 2005년 최고의 영화 5위로 꼽은 ‘타임’이 “이 영화는 궁극적인 발리우드 러브스토리”라고 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 뻔한 소재-알츠하이머병이 좀 특별하다고 해봤자 기억상실은 우리 막장드라마의 단골소재가 아니던가-임에도 ‘블랙’은 진한 여운을 선사한다.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건 뭐니뭐니 해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분이다.
암흑의 세상에서 야수처럼 날뛰다 문득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깨닫는 어린 미셸 역의 아예사 카푸르는 처음 해본 연기라는 게 믿기기 않을 정도로 어둠에 갇힌 소녀의 절망과 희망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성장한 미셸 역의 라니 무커르지 또한 자기보다 먼저 결혼한 동생에 대한 묘한 질투, 여자로서의 감정을 느꼈을 때의 당혹스러움, 사하이가 떠났을 때의 절망 등 ‘장애인 미셸’뿐 아니라 ‘인간 미셸’의 내면을 온갖 손짓과 표정으로 풍성하게 담아낸다.
사하이를 연기한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타브 밧찬의 신들린 듯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불가능은 내가 미셸에게 가르치지 않은 유일한 단어”라는 바위처럼 단단한 신념, 인생은 아이스크림 같으니 녹기 전에 맛있게 먹으라는 따스한 가르침은 관객의 가슴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멜로의 계절 가을을 여는 첫 영화로 썩 잘 어울리는 감동과 눈물의 명편이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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