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을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으며 남동쪽으로 공산성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서는 화려한 장식이 부착된 장고형 그릇받침 등의 유물이 수습되기도 했다.
당시 이 유적의 발굴로 정지산 정상이 과거 왕이 천제(天祭)를 올리던 제단으로 확인됨에 따라 백제큰길 공사는 터널로 설계가 변경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공주시가 농공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던 의당면 수촌리 일대에서는 고분군과 함께 금동신발과 관모 등 지배계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다수 발견된다. 이 유적 역시 한성기 백제의 중앙과 지방 세력의 관계 등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사료로, 무령왕릉 이후 최대의 발굴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또 지난 2004년에는 공주시 신광동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부지에서 신석기와 청동기에서 고려 및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기도 하다.
이렇듯 백제의 옛 왕도 였던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에는 수많은 역사문화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 금강변에는 지금도 다수의 고분군을 비롯한 수많은의 유적들이 그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채 말없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구체적인 조사는 미약한 상태다.
발굴 유적은 정지산 유적이나 수촌리 고분군 처럼 개발 과정에서 우연치 않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금강살리기 사업을 앞두고 문화재 조사가 관심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강살리기 사업에 앞서 철저한 문화재 조사와 보전 대책이 먼저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자칫 금강변의 무수한 유적들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강 살리기 사업으로 훼손되거나 매몰될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문화재 지표조사, 450곳 유적 확인
비록 강 줄기를 따라 사업이 예정된 지역에 국한돼 실시된 조사지만 최근 정부가 금강살리기 사업을 앞두고 실시한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도 이런 점에서 주목해 볼 만 하다.
이번 조사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일단 고래로부터 인류의 주 생활터전이 돼 온 금강 유역의 문화재를 종합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첫 기회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 하다.
예상대로 조사 결과에서는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한 금강 일대에 무수한 유물들이 매장돼 있음이 확인됐다. 제외지와 제방경계로부터 50m 이내 지역에서만 85곳의 유물 산포지와 4곳의 고분군 등 모두 192곳의 유적이 확인됐으며, 제내지 500m이내의 주변 문화재를 포함하면 확인된 유적지는 모두 450곳에 이른다.
조사단은 이 중 금강살리기 사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제외지에서만 9개소에 대한 시굴조사와 10개소에 대한 분포확인 조사, 11개소에 대한 표본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사업범위 경계로부터 500m이내 지역에 위치한 지정문화재가 87곳에 대해서는 사업시행에 따른 영향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 중 논산 미내다리를 비롯한 9곳은 사업시행의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돼 보존대책이 수립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현장 조사 10여 일, 부실 조사 논란도
그러나 이번 문화재 지표 조사는 처음부터 부실 조사 논란을 불러 왔다. 무엇보다 짧은 조사 기간이 문제였다. 금강권역 조사에는 6개 조사기관에서 30여 명의 조사 인력이 투입됐으며, 지난 2월 11일부터 4월 30일까지 약 80일에 걸쳐 조사가 진행됐다. 이 중 현장 조사 기간은 기관에 따라 10일에서 15일 정도였으며, 상당수 시간이 보고서 작성에 할애됐다. 이로 인해 조사기관들은 조사의 한계를 여러 차례 토로하며, 수중조사를 비롯해 지명과 민속ㆍ고건축 등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이와 함께 최문순 의원은 “금강의 공주 곰나루 주변유적을 비롯해 지표조사기관이 발굴·조사 의견을 낸 곳에 대해서 조차 문화재청이 낮은 단계의 표본시굴조사를 통보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고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심지어 직접 조사에 참여했던 조사 기관 관계자 조차 이번 조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한 조사기관 관계자는 “문화재 조사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촉박한 시간으로 형식적인 조사에 그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며 “사실상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문화재 조사는 개발 사업 과정에서의 요식 행위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애초 조사 단계부터 국토해양부가 조사 영역을 지나치게 축소하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초 국토해양부는 문화재 조사 지역을 제외지로 한정하려 했으나 조사기관과 문화재청 등이 동의하지 않아 조사 범위를 확대했으며, 이후에도 추가 조사 영역을 축소하려 했다는 것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금강은 역사시대의 중요한 교통로 였고, 어디서 어떤 유적이 나올지 알 수 없다”며 “강의 특성상 문화유산이 한 번 수몰되면 되찾을 수 없는 만큼 보다 광범위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에 유적 훼손 우려' vs `문화재 보존이 사업 원칙'
논란이 지속되자 국토해양부는 지난달 해명자료를 내고 “통상 육상지표조사는 20일 이내 완료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4대강 유역에 대한 조사는 충실히 진행됐다”며 부실 조사 논란을 일축했다.
국토부는 또 발굴지역 축소 주장과 관련해서도 “조사기관이 조사 필요 의견을 제출한 곳 가운데는 실제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곳까지 포함돼 있어, 실제 공사기 진행되는 제외지 구간에서 조사가 필요한 곳을 확인해 조사방법을 결정한 것일 뿐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에 앞서 문화재청도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재 보존을 원칙으로 사전유구확인이 필요한 지역에 대해 추가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며, 나루터유적 등 수중발굴이 필요한 곳에 대해서는 잠수부를 투입해 수중유구상태와 주변환경을 집중 조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은 또 “조사 결과 매장문화재가 확인되면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발굴조사를 하거나 설계를 변경해 공사 대상지에서 제외하는 등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문화재 보존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해명과 입장 표명에도 문화재 훼손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선 나루터 뿐만 아니라 충적지에서도 선사시대 유물이 나오는 등 매장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수중조사 범위도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충적지는 범람이 되고 유속이 빨라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없으며, 강 바닥에서도 제대로 된 유구가 확인될 가능성이 낮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4대강 사업 국민검증단'은 최근 금강 등에 대한 현장 검증을 통해 일부 문화재가 수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일례로 금강의 경우 공주에 보가 설치되면 강에 인접한 공산성의 성벽과 전각 등이 수위 상승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금강변에 위치한 공주 석장리 유적지도 제외지에 자리해 각별한 보존조치가 필요하며, 고마나루 역시 공주보 건설로 경관이 훼손될 우려를 낳고 있다. 또 제방에서 불과 160m 거리에 위치한 왕흥사지 등 수변에 자리한 부여 지역의 유적들도 공사에 따른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 강종원 연구위원은 “금강은 예로부터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돼 온 만큼 수중에 다수의 매장문화재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며 “퇴적층 변화 등에까지 면밀한 조사가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으며 겉핥기식 조사가 이뤄진다면 준설 등의 사업 과정에서 매장문화재가 영구히 묻히거나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금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역사ㆍ문화 복원에 관심을 일깨우는 취지에서라도 이번 기회에 금강 유역의 문화재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이종섭·사진=김상구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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