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한국 현대사에서 지팡이는 정치적 갈등과 핍박, 애증의 표식이다. 언론문제를 다루는 미디어전문지에 `지팡이와 밀짚모자'란 만평이 실렸다. 노 전 대통령은 밀짚모자를 쓰고 김 전 대통령은 지팡이를 짚고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담았다. 국회 분향소 마당에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품에는 10년 넘게 사용해 온 지팡이가 포함되었다. 한쪽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선생님'으로 불렀고 다른 진영은 그냥 `지팡이'로 그를 대체했다. `선생님' 쪽은 그를 흠모하며 존경했고 `지팡이' 측은 권모술수로 작당이나 하는 사람으로 그를 폄훼했다.
김 전 대통령이 지팡이를 짚게 된 것은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 당시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다. 그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김 대통령은 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근소한 표차이로 낙선했다. 김 전 대통령의 차량을 덤프트럭이 덮친 의문의 교통사고로 인해 고관절 변형증을 앓게 되고 그 후 그는 불편한 몸을 지팡이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의 노년은 지팡이대신 휠체어의 역사였다. 김 전 대통령의 지팡이와 휠체어는 아들에게 대물림되었다. 그의 큰 아들 김홍일 전 의원 역시 신경근육이 마비되고 말문이 닫혀버리는 파킨슨씨 병을 앓고 있다.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때 수사기관에 붙들려가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은 깊고 길어서 지팡이와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버지 김대중의 임종을 당해서도 아들은 `아버지'라는 짧은 몇 마디 말조차 고통스러워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목이 잠겼다.
한국 현대사에서 지팡이는 마법의 장치가 아니라 정치적 경쟁자의 폐부를 찌르고 다리를 비트는 흉기였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비수로 쓰인 지팡이를 원래의 기능대로 불편한 역사를 디디고 버티며 보정하는 장치로 전환시켰다.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정권의 책임자를 용서하고 그와 화해하러 가기 위해 그는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소수자들의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억압하는 장막을 걷어내는데 그의 지팡이는 쓰였다.
나무 지팡이에 의존해야 하는 그의 육신 자체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한걸음씩 디뎌가는 지팡이였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장애는 더 이상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그는 웅변했다. 남아공의 만델라에 그를 비유하곤 하지만 신체가 불편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가깝다.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때문에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12년간 미국의 국정을 이끌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칼을 건넬 때 칼 끝이 아니라 손잡이를 잡게 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것은 습관으로, 쉽게 되지 않는다. 하물며 자신의 숨통을 겨눠 찌른 지팡이의 손잡이를 상대에게 쉬이 쥐게 해주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필자 역시 그의 공로와 과실을 구분해 평가한다. 다만 그가 외부의 위해로부터 당한 신체적 장애를 거뜬히 극복하고 더불어 정치적 경쟁자들이 자신에게 안겨준 질곡의 지팡이를 슬기롭게 활용한 점을 짚어보고자 했다. 그 자신 육신의 거동을 위해 지팡이를 짚었지만 그는 그 자체로 우리 역사 발전의 지팡이로 삶을 살았다. 크든 작든 우리 또한 누군가의 지팡이 손잡이가 되어 살아갈 수, 혹은 상대를 가격하는 비수달린 지팡이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 또한 옷깃을 여며볼 시간이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지팡이가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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