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보급률이 50%에 그쳤던 당시에는 ‘아파트’하면 못사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수준으로 여겨졌다. 철거주민 이주 차원에서 건설됐던 아파트가 고급화되면서 이제는 주거지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주거 중심문화를 차지하고 있다. 대전지역 아파트의 변천사를 짚어봤다.<편집자 주>
▲1971년 석교동 4층짜리 제일아파트, ‘대전 첫 아파트’= 대전 아파트의 역사는 철거민이 이주할 집을 제공할 목적으로 건설되면서다. 1976년 대전시정백서에 따르면 1971년 완공된 중구 석교동 4층 48세대 아파트가 대전에 등장한 첫 아파트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당시 번성하던 문창시장을 더 확대하기 위해 인근에 무허가로 만들어진 판자촌을 철거했고 그 과정에서 집을 잃은 이주민에게 제공된 아파트였다. 15평에 방 2개, 거실과 부엌이 함께 있고 화장실은 층마다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다. 정부의 주택보급 정책에 맞춰 대전에서도 공공주택 건설 붐이 일었고 그중 일부를 3~4층 규모의 아파트로 지었던 것.
이 당시 대전지역 아파트는 생활이 편리한 공간이라기보다 적은 예산으로 많은 세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경제적 효율에서 지역에 정착했다. 1976년 아파트 건설 비용에 대한 기록을 보면 “방 2개와 마루, 창고, 발코니 등 실용면적 10평을 잡아 1세대 공사비로 26만 원이 들어 도시 발전상 요긴하다”고 기록돼 있다. 남양, 쌍용, 민영, 계룡 등이 이 당시 대전에 지어진 4~5층 규모의 아파트다.
▲ 1970년대 대전에 등장한 서민형 아파트 전경. |
▲주택보급률을 높여라=1970년대 초 주택보급률을 보면 1971년 58.7%, 1972년 57.8% 등 50%대를 오갔다. 대전시 전체 7만 6000여 세대가 거주하는 가운데 이 중 4만 4000여 세대만 자기 집을 갖고 있었다.
당시 대전은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집단이주해 무허가 판자촌이 도심을 벗어난 8개 지구에 난립해 도시개발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었다.
1970년 10월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 밝힌 주택 상황을 살펴보면 서울이 주택보급률이 54%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시의 주택난은 국민경제 성장과 더불어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 없이는 해소하기 힘들었다. 이 같은 도시 주택 문제는 곧 도시문제로 이어져 70~80년대 가장 큰 현안이었다.
당시 도시계획의 차질을 막기 위해 벌이는 무허가 건물 철거도 활발히 이뤄져 1975년 1800여 건, 1977년 이후에는 5300여 건을 정리했다고 기록돼 있다.
대전시는 이러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주변 지역의 개발을 추진해 값싼 택지를 조성해 영세민에게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당시 대전의 주택 건축현황을 보면 1971년엔 2772동, 1973년 2482동, 1975년 3391동을 새롭게 지었다. 이후 1976년에는 1년에 1000여 동의 집을 신규로 건축했다. 아파트 건설과 함께 주택 보급도 크게 증가했다.
정부의 서민주택보급 정책에 힙입어 소형규모인 대한주택공사가 공급한 주공아파트는 대전에도 70년대 중후반부터 속속 등장했다. 태평동과 가장동, 탄방동, 용운동 등지에 5층 규모의 서민형 아파트가 세워진 것이다. 이가운데 가장동 주공아파트 등 일부지역 아파트는 현재 재건축을 통해 고층아파트로 변신했거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 중구 태평동 유등천 변에 우뚝 서 있는 고층아파트단지. |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현대식 아파트 등장= 4~5층을 밑돌던 아파트가 10층 이상 고층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 1978년 입주한 중구 문화동의 삼익아파트는 지역에서 최초로 14층 아파트로 지어진 고층아파트다. 3개 단지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당시 4~5층에 불과했던 주변 아파트와 비교할 때 높은 층수로 눈길을 끌었다. 당시엔 볼 수 없었던 아파트 안에 설치된 승강기도 화제였다. 이어 1979년에는 태평동에 15층 규모의 삼부아파트가 지어져 70세대가 입주했다. 삼부아파트는 당시로선 고급아파트였다. 이때부터 대전에 고급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택을 선호했던 부유층이 이때 아파트로 대거 이주했다.
지역별로 고층 아파트가 속속 등장했다. 동구에는 1980년 삼성빌라맨션이 12층 규모로 들어섰다. 서구에는 1988년 12층의 계룡맨션, 유성구는 1989년 10층 규모의 연구원 현대아파트가 지어졌다.
처음에는 공사비를 줄이고 주택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만큼 살집을 마련하지 못한 주민들이 입주했다. 그렇지만 20~30평의 넓은 면적에 최신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화동 삼익아파트와 태평동 삼부아파트에 ‘돈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지역에서도 본격적인 아파트 붐이 일기 시작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지역에서 본격적인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1989년 오류동 방직공장 터에 세워진 삼성아파트는 2500여 세대의 대규모 단지였다. 1994년 51개 동(3958세대)을 선보인 전민동 엑스포아파트는 현재까지 대전지역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를 자랑한다.
▲아파트 높이 경쟁=최근 들어서는 아파트들은 높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대전지역에서 층수가 가장 높은 아파트는 유성구 도룡동의 스마트시티로 700여 세대 규모에 39층이다. 다음으로 동구 가오동 은어송마을 1단지는 31층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기록은 조만간 깨질 것으로 보인다. 대덕구 석봉동에는 3400세대 분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층수도 50층까지 만들 예정이어서 대전에선 가장 높은 아파트로 기록될 전망이다.
1971년 대전시내의 주택을 층별로 구분한 자료를 보면 전체 주택 1889동 중 1층 주택이 1543동, 2층 주택이 302동, 3층이 33동이었고 4층 건물은 11동에 불과했다. 당시 건설 수준이 4층이 최고였음을 보여준다.
현재는 상황이 바뀌었다. 아파트는 대전에 모두 578대 단지에 26만 800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대전지역 전체 주택 40여만 가구 중 66%를 차지한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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