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언복]왜 자꾸 `구관(舊官)'이 그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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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언복]왜 자꾸 `구관(舊官)'이 그리워질까

[목요세평]표언복 목원대 사범대학장 국어교육과 교수

  • 승인 2009-08-26 14:09
  • 신문게재 2009-08-27 20면
  • 표언복 목원대 사범대학장 국어교육과 교수표언복 목원대 사범대학장 국어교육과 교수
오래도록 왕조사 중심의 역사이해에 익숙해진 탓일까.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즐겨 전임대통령들의 공과를 화제에 올리곤 한다. 더러는 확인되지 않은 뒷얘기들을 들춰내기도 하고, 갖가지 풍자적인 우스갯소리를 지어내기도 한다. 빠지지 않는 건 누가 누구만 못하고, 누구는 누구보다 나았다는 식의 비교 평가다. 세상에 대한민국 백성들만큼 역대 대통령들의 면면과 치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백성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얼마전 산행길에 나섰다가 조령3관문에서 만난 택시기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벌기보다도 쓰기에 능한 젊은 세대의 소비행태를 걱정하던 끝에 자연스럽게 이어진 화제도 전직 대통령 얘기였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예찬론자였다. 그의 주장인즉 우리가 밥 걱정 않고 살게 된 것은 불과 사십 년 미만이라는 것, 그 공은 뭐니뭐니해도 전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덕이라는 것, 독재자니 어쩌니 떠들어봐야 그건 배부르고 가방 끈 긴 사람들의 얘기일 뿐 배고픈 설움에 비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고장에서는 누구든 선거에 나오면 박정희를 조금 닮기만 했어도 몰표를 얻을 것이라고도 했다.

결론은 이랬다. “역대 대통령 다 모아놔도 박정희 한 사람만 못할 겁니다.”그에게 있어 박정희 이후의 모든 전임 대통령들은 `깜도 안 되는'사람들일 뿐이었다. `박정희는 도대체 누구인가?' 사람들은 왜 `구관이 명관'이란 말을 입에 달며, 시해된 지 삼십 년 가까이 지나도록 기념관 하나 얻지 못한 전직 대통령을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일까? 이날의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내 생각의 갈피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를 미워하다 이런 저런 곡절을 겪은 바 있는 나로서는 계제에 나름대로의 주견을 좀 더 분명히 해 두고 싶은 생각도 있어 더욱 그랬다.

왜 우리는 자꾸 구관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성철 전 종정이 열반했을 때 사람들은 이 땅의 마지막 선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강원용 목사가 소천했을 때도 종파를 초월해 사람들은 이 땅의 마지막 기독교 지도자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사람들은 이후 누구도 그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없을 듯이 아쉬워하고 슬퍼했다.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왜 그들만한 인물이 또 없겠는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수많은 후진들이 끊임없이 나고 자라고 있는데 그게 어디 타당하기나 한 말인가.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자꾸 가버린 구관이나 그리워하며 절망하는 것도 전혀 터무니없는 일만도 아니다. 현실사회를 돌아보면 이들을 대신할 만한 인물다운 인물,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좀체로 눈에 뜨이질 않으니 말이다. 지도자가 지녀야 덕목중의 기본은 도덕성과 능력이다. 세간에 이름 석자 오르기 시작하면 온갖 구리고 썩어 문드러진 비리와 혐의들이 낚싯줄에 오징어 걸려 나오듯 하는 게 우리사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수준이다. `깜도 안되는' 주제에 어쩌다 천운을 만나 `지도자'가 되어 새까맣게 선팅한 고급 승용차 뒷좌석 깊숙이 몸 숨기고 앉아 거들먹거리지만 기껏 구관이 일구고 씨 뿌려 가꾼 밭 헤집고 다니며 열매나 따고 낫질이나 하는 수준인 지도자들은 우리 사회 구석 구석에 또 얼마나 많은가.

지도자는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로 성취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에 의해 길러지기도 한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큰 바위 얼굴'이 있어야 한다.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인격 속에 육화시켜야 할 그 큰 바위 얼굴은 굳이 현실 속의 실재가 아니어도 좋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도덕적 선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신앙처럼 마음에 담아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해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될성부른 떡잎'을 가려 어려서부터 관리하고 키워가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이런 노력 없이 오직 수 쓰고 잔재주 부려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짙푸른 `떡잎'들을 오염된 진창 속에 방치해 둔 채 비를 기다리는 와룡을 찾아서도 안된다.

거푸 또 한 명의 정치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다. 보기에 따라서는 공이 큰 만큼 과오도 없지 않은 인물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만큼 선 굵은 지도자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의 서거를 애도하는 마음 한편으로 어쩐지 한결 잘고 가벼워 보이는 우리 정치판의 현실이 자꾸 허전하고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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