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곁에서 좋은 배움을 주시는 은사님과 몇 명의 제자들이 함께 3~4일 정도의 일정으로 사생 여행을 다니다보면, 목적지에서 만난 자연산수에 심취되어 각자 흩어져 하루 종일 산과 계곡에서 사생 작업을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길에 잘 익은 막걸리집이라도 만나면 모여앉아 은사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도 한다.
배움은 끝이 없으며 채워도 채워도 늘 빈 부분이 더 많이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내가 지금 아는 것은 자네들 때에 알았다면…” 하시던 노 은사님의 여운어린 이야기 속에 팔순의 세월이 녹아 흐름을 느끼기도 한다.
채움과 비움의 끝없는 여정이라 생각되는 인생의 길을 화가로 교육자로 그렇게 평생을 달려온 길에도 끝이 없으며, 모든 일상의 일들이 그러한 듯도 하다.
이번 사생여행은 설악산을 목적지로 하였는데 이는 몇 해 전의 금강산을 다녀오며 느꼈었던 아쉬움을 채우기 위한 코스이기도 하였다.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산중에 하나가 금강산인데, 조선중기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를 비롯해 근대 소정 변관식의 삼선암등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금강산은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봄-금강산, 여름-봉래산, 가을-풍악산, 겨울-개골산)으로 불리기도 하며, 옛 화가들의 사생지로, 좋은 스승으로, 동료가 되기도 한듯하다.
그러한 금강산을 여러 절차를 거쳐 들어가, 어느 곳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제한된 여행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화가들에게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여행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그런 중에도 미술사에 등장하는 몇몇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아쉬움을 뒤로 했다.
금강산과 설악산은 한 줄기의 형과 동생쯤으로, 금강산 사생에서 경험하지 못한 자유로움에 빈자리, 채움 여행을 그 동생에게 기대려 설악산을 찾았다.
몇 해 전 북쪽 땅이 고향이신 노 은사님이 금강산을 다녀와서 그 아쉬움을 달래려 홀로 며칠간을 지냈다던 이곳에 제자들과 함께 다시 찾아온 산이 친구인 듯 즐거운 시선을 떼지 못하시던 모습에서 화가와 산수 자연의 관계는 특히, 한국화의 진경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는 그만한 스승도 친구도 없는 듯하다.
계절과 날씨 그리고 그곳에 선 화가의 마음에 따라 산수자연 속에서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며 또 다른 산수와의 만남이 그 설렘을 더하게 하는 것이다.
첫날 도착한곳은 장수대로 한 시간 남짓한 근처의 대승폭포(금강산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3대 폭포 중에 하나)에 오른 일행은 시간의 아쉬움으로 각기 사생도구를 펼쳐들고 여리지만 강한 폭포의 물줄기와 그 속에 버티고 있는 소나무의 생명력을 화폭에 담았다.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흘러내림을 주체 할 수 없지만 마주한 자연산수속에서 또 다른 멘토를 만난 듯 모필을 통해 화선지에 스며드는 수묵의 느낌이 화지 위를 수놓고 함께한 화우들과 현장에서 체험하는 또 다른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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