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 |
엊그제 1학년인 J군의 자모님을 만나 J의 안부를 물었더니, 공부도 알아서 잘할 뿐만 아니라 방학 동안에 키도 훌쩍 크고 좀 의젓해진 것 같다며 흐뭇해 하셨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세웠던 계획은 아랑곳없이, 게으름 피우고 컴퓨터 게임 등에 빠져 지내다가, 개학이 코앞인 지금에서야, 방학 과제를 하느라고 야단법석을 떠는 녀석들도 아마 꽤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내 예측을 반증이라도 하듯, 며칠 전에 어떤 자모님으로부터 개학일이 언제냐고 묻는 전화를 받은 바 있고, 심지어는 자녀가 방학 과제에 관한 유인물을 분실했다며, 그 걸 한 장만 복사해 달라고 학교로 직접 찾아 온 분도 있었는데, 그런 때 내 심정은 솔직히 조금은 황당하고 실망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분 자모님을 친절히 대하면서도 꼭 한 말씀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자모님, 언제까지 그렇게 챙겨 주시려고요. 이제 자녀가 중학생이 되었으니 그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셔야죠.” 그러면 자모님들은 죄송하다며 민망해 하시는데, 이 지면을 통해 학부모님들께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다.
앞의 그런 일들뿐만 아니라 학교 생활에서 생기는 소소한 일들은, 학생 스스로가 해결하도록 좀 놓아 주시라고. 그리고 자녀를 믿고 한 발 물러서서 좀 기다리시라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걷다가 넘어질 때가 많은데,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걷는 방법을 체득하면서 일생을 살아가지 않던가.
그나저나 이제 우리 선생님들은 그 천차만별의 청개구리 같은 학생들을 맞아 남은 한 학기를 또 가르치고 이끌어 가야한다. 아니 어쩌면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실감 나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
학생과의 전쟁, 그렇다. 굳이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에서 매번 이길 수 있다.’ - 는 말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방학 동안에 한두 가지 이상의 연수를 받으며, 자신만의 비법을 터득하고는, 아마도 그 사랑스런 오합지졸의 적군(학생)들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단단히 벼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마음가짐의 밝은 웃음으로 가득할 2학기의 교정을 그려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첫째, 요즘 전국적으로 아니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플루가 빨리 소멸되어, 그로 인해 휴교 또는 휴업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둘째, 강한 땡볕 아래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알알이 영글어 가는 저 들판의 오곡백과들처럼,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는 우리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더욱튼실하고 풍요로워져서, 각자에게 합당한 결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셋째,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 외적인 어떤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이 시대 사표로서의 천직(天職) 의식을 더욱 굳건히 가지며, 오직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데만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교직 풍토가 정착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나의 바람이 성취될 수 있도록 내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