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호 대전시교육감 |
첫 걸음 떼기가 어렵지, 학교에 가면 학생들을 기다리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임의진 시인의 ‘마중물’처럼 말이다.
“우리 어릴 적 펌프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 이라고 있었다. /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물을 데리고 왔다. /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지금처럼 상수도 시설이 좋지 않던 그 시절, 두레박 우물보다 진화한 펌프를 이용하여 지하수를 끌어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 땅속 깊숙이 숨어있는 물을 퍼 올리는 데는 물 한 바가지가 필요했다. 물 빠진 빈 펌프 위로 물 한 바가지를 붓고 빈 펌프질을 하다 보면 압력에 의해 지하에 숨어 있던 물이 어느덧 콸콸 쏟아진다. 그쯤 되면 펌프 지렛대를 천천히 눌러도 힘들이지 않고 물이 쏟아진다.
이렇게 물을 끌어 올리려고 공기 압축을 위해 처음 붓는 한 바가지 물이 ‘마중물’이다. 손님 마중하듯 땅 밑바닥 샘물을 마중 나가서 데려온다 하여 마중물이라 불렀다. 영어에서도 이 물은 ‘calling water’ 즉 ‘물을 부르는 물’이라고 한다. 비록 한 바가지의 적은 양이지만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물줄기를 불러오는 힘을 지녔다. 마중물은 깊은 물줄기를 끌어올려 놓고 자신은 사라지지만 버려지는 물이 아니다. 버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마중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마름을 해결하고,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 개학이다. 콸콸 쏟아지는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마중물이 필요하듯 두렵고 어설픈 발걸음을 내디디며 새 학기를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기 위해 우리들은 기꺼이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을 위한 최상의 사랑과 최선의 보살핌만이 그들을 ‘개학 증후군’에서 벗어나게 할 마중물이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건 살아가면서 스쳐가는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어야 할 생명들이다. 여름동안 학생이 없었던 학교 운동장은 잡초가 자라 휑뎅그렁하다. 그들이 운동장 가득히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게 재잘거릴 때 그 곳은 아름다운 꽃밭이 되고, 향기로움이 넘쳐나는 희망의 꽃동산이 될 것이다.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는 말이 있다. 칠월과 팔월이 어정어정, 건들건들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는 뜻으로 처서가 지나면 농부들은 여름내 매만지던 쟁기와 호미를 깨끗이 씻어 갈무리하고 추수를 기다린다. 이제 학생들을 맞이한 학교 교실은 선생님이 쏟아 부운 마중물에 의해 맑은 바람과 따스한 가을 햇볕의 기운을 받아가며 풍요로운 교육 결실을 맺기 위해 더욱 바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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