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전자투표가 아닌 투표함을 이용하여 투표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여 보자. 의장이 투표종료를 선언하여 표결 결과가 전광판에 뜬 것은 투표함을 개봉하여 표를 집계하였고, 그 결과를 발표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투표함을 개봉하고 보니 투표에 참여한 사람이 부족하여 의사정족수에 미달하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투표는 무효가 되고, 다음에 다시 의사일정을 잡아 표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국회법에서 정한 것이고, 그동안 국회 운영의 전례였다. 투표를 종료하고 보니 표결에 참여한 사람이 부족하여 이는 무효이고 다시 투표하여 안건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것이 재투표이다.
위의 상황을 다시 이어가 보자. 표결에 참여한 사람의 수가 부족하니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표결에 참여하여 회의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 인원을 억지로 맞추었다. 한 사람이 기표소에 여러 번 들락거렸다는 것이다. 대리투표이다. 도대체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날치기도 아니고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대리투표에 참여한 것이 확인되면 그 표결은 원천무효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고 법률적 판단이다.
도대체 미디어 법이 무엇이기에 한나라당은 이처럼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을 파괴하면서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이 법이 없으면 우리나라 언론이 당장 궤멸하는 것인가? 이 법이 있어야만 우리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입만 열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정치를 하겠다고 하였다. 과연 미디어 법이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법이란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보수적 족벌언론과 대기업에 새로운 떡을 안겨 준 것에 불과하다. 미디어 법을 통해 언론을 장악하고, 현 정권에 우호적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는 정치적 야욕이 있을 뿐이다. 최근에 시행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가 ‘언론법 강행처리는 한나라당의 재집권과 조선·중앙·동아일보 방송을 위한 것’이라고 응답한 것이 이를 확인하여 준다.
우리나라 방송시장의 여론 독과점을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도 기만이다. 신문시장에서 절대적 점유율을 보이는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방송시장까지 장악하게 되면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다양한 여론 형성은 불가능하다. 온통 냉전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여론몰이만이 있을 뿐이다. 대기업이 언론을 장악하는 경우에 정·경·언의 거대한 미디어 복합체를 이루어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언제 중앙일보가 삼성을 제대로 비판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폭력을 동원하여 재투표와 대리투표를 통해 불법으로 법률을 통과시켰다. 야만의 정치이다. 민의의 정당인 국회에서 국민 3분의 2가 반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부정한 배반의 정치이다. 언제까지 이러한 야만의 정치와 배반의 정치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