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들도 반한 온천수... '물좋은 유성' 명성 이끌어

조선 왕들도 반한 온천수... '물좋은 유성' 명성 이끌어

<대전개시 60년 그현장 그모습> 15.유성온천

  • 승인 2009-08-19 19:59
  • 신문게재 2009-08-20 12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물에 몸을 담그고 씻는 일은 특별한 날을 앞두고서야 할 수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결혼을 앞두고서라든가, 새해를 맞아 작심하고 목욕이라도 갈라치면 주변 사람에게 ‘유성으로 물맞으러 간다’고 어스름을 놓던 때였다. 목욕하는 기회도 드물었지만, 그것도 온천을 이용하기는 더 귀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태조가 방문해 목욕을 하고 갔다는 기록에서부터 유성이 온천시설로 본격적으로 개발되던 시기를 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의미를 되짚어봤다. <편집자 주>

 
▲ 1970년대 유성가는 길. 1970년대 후반에서야 도로포장이 됐다.
▲ 1970년대 유성가는 길. 1970년대 후반에서야 도로포장이 됐다.
 ▲조선 태조이후 왕들이 자주찾던 온천지대 유성=대전 유성지역에 온천 목욕탕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때는 확실치 않지만, 근대적 여관·호텔이 만들어지면서 온천탕을 개설하면서부터로 여겨진다.

 ‘충남 개도 100년사’에 따르면 1915년 8월에 상업적으로 사용할 유성온천장이 발굴되고 1918년 2월에 유성온천호텔이 개관해 충남의 최초 근대식 시설을 갖춘 온천시설이 들어섰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전까지 유성은 행정구역상 대덕군 유성읍으로 이곳에 온천은 주민들이 우물에서 온천을 퍼다가 식수로 사용하거나 가정에서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정도였다. 상업적인 시설을 갖추고 온천이 개발된 것은 일제시대 이후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시기만 해도 유성에서 온천목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일본인 고위관료나 가능했지, 일반 서민들은 집 근처 냇가에서 씻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후 유성온천은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폐허로 방치되다가 1960년대에 다시금 개발의 시기를 맞는다. 1966년 지금의 유성호텔 자리에 유성관광호텔이 신축되는데 5층 건물에 6인승 엘리베이터, 현대식 사우나 시설을 갖췄다. 이보다 앞서 1920년대에는 현재의 국군휴양소 근처에 만년장 호텔이 만들어졌고 온천개발을 바탕으로 한 유락시설이 들어선다.

 이 당시 유성온천 호텔 근처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호수위에 연회를 열 수 있는 10실 정도의 수상 누각과 함께 벚꽃 등으로 화려한 조경을 해 당시 유성의 유명장소로 꼽히기도 했다.

▲ 홍인장 옛 모습. 건물 앞 당시 논밭은 지금은 빽빽한 건물로 뒤덮였다.
▲ 홍인장 옛 모습. 건물 앞 당시 논밭은 지금은 빽빽한 건물로 뒤덮였다.
 ▲유성에 물맞으러 간다?=사실 유성에 온천이 샘솟아 이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신중동국여지승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중동국여지승람에따르면 조선 태조가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는 문제로 신도안 지방에 들렀을 때 유성온천에서 목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종이 1413년 가을에 유성에 들러 목욕을 했다는 기록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의 특별한 기록일 뿐 6·25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된 유성온천은 대전시민들이 중요한 날을 앞두고 어렵게 한 번씩 찾는 명소가 된다.

 오랫동안 몸에 밴 생활에다 지겹게도 따라다닌 가난 때문에 아까운 돈을 들여가며 찾아야 하는 목욕탕은 쉬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배를 채우는 일이 다시는 절박한 과제일 수 없는 조금은 넉넉한 시절에도 목욕탕을 찾는 일이 연중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쩌다 목욕갈 기회라도 생기면 ‘유성에 물맞으러 간다’라고 이곳저곳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홍인호텔 민경용(65) 회장은 당시를 “ ‘물맞으러 간다’라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유성에 목욕가는 일을 그렇게 표현하고 중요한 일을 앞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유성까지 가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재 서대전네거리에서 유성네거리까지 이어지는 한밭대로가 당시에도 공주로 가는 지름길로 비포장의 흙길이었다. 이곳에 버스가 오가기 시작한 것은 1970년 후반얘기로 그전까지 택시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택시를 타기도 부담스러워 대부분은 신작로를 따라 마냥 걸어가기도 했다.

큰맘 먹지 않고서는 좀체 구경하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들인 공에 비해 당시 목욕탕시설은 요즘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다. 사람 소수들이 드문드문 찾아들기 때문에 굳이 넓은 공간도 훌륭한 시설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뜨거운 물을 가둬둔 욕탕 하나에 앉아서 몸을 씻을 수 있는 둥근 나무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벗은 옷은 바구니에 담았고 샤워기는 물론 수도꼭지도 구경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그것도 온천탕에서 목욕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분명히 자랑거리였다.

 온천이 대인기를 얻는 때는 역시 설·추석 같은 명절 무렵. 나무 또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물바가지 겸 의자 수가 절대 부족해 이를 서로 차지하느라 심심찮게 다툼이 벌어졌다. 이러한 싸움 때문인지 이때부터 목욕갈 때면 세숫대야를 아예 허리에 끼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곤 했다.

▲ 1940년대 유성호텔 전경. 근대식 온천시설과 숙박시설을 갖추고 유성지역에 최초로 등장했다.
▲ 1940년대 유성호텔 전경. 근대식 온천시설과 숙박시설을 갖추고 유성지역에 최초로 등장했다.
 ▲관광특구로 지정되고 서울서 원정오던 시기=유성이 온천과 숙박시설이 갖춰지면서 1970년대에는 신혼여행지로 주목받게 된다. 신혼여행객들은 유성에서 목욕을 즐기고 현재 유성호텔 자리에 있던 연당이라는 연못에서 사진을 찍고 대종당 등 당시 유명했던 한식집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는 게 일종의 관광코스였다. 당시에도 유성의 호텔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신혼여행객이 이용했을 뿐 일반 신혼부부는 호텔 근처 여관에서 머물러야 했다.

 이 지역 온천이 다시금 도약의 기회가 된 것은 1984년 제주도, 경주, 부산 등과 함께 유성이 관광특구로 지정된 때와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를 앞두고 도로확장 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확충이 이뤄졌을 때다.

 당시 관광특구로 지정된 유성은 경제 회생의 기회로 삼은 반면 면학분위기를 해칠 것을 우려한 인근 대학교 학생들은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유성이 관광특구 지정으로 전국에서 찾을 수 있는 지역이 됐으며 이 지역 상가들이 영업시간에 제약 없이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게 됐다.

전국적으로 통행금지가 있던 당시 식당이나 술집의 영업시간도 밤 12시로 제한돼 있어 밤새도록 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대전 유성온천에서 즐기고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1993년 엑스포를 앞두고 이곳에 대한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유성 네거리에서 충남대 정문까지 도로를 이때 넓혔으며 도시의 느낌이 날 수 있도록 조성됐다. 이에 맞춰 개발활동도 많이 늘어나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유성온천의 현재=유성의 온천은 지금까지도 한국 전통온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부존량 2400만㎥를 자랑하는 유성온천은 온천권보호지구로 지정돼 연간 96만 6000㎥로 온천 사용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개인이 온천공을 발굴해 대중사우나 시설을 갖춘 대형 업소가 19개에 이른다.

유성온천수는 지금까지 PH 7~8 정도의 약 알칼리성에 물의 경도도 7~8 정도여서 아주 가볍고 좋은 물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땅에서 뽑아 올린 물의 온도가 25도 이상만 되면 온천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어 온천의 희소가치가 줄어든 상태다. 평균 42~55도의 유성온천 장점을 알릴 수 있는 차별화에 노력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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