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정치인의 상징성이 부러워 HK(한화갑), CJ(박찬종), JK(김중권), JC(이종찬), DY(정동영), KT(김근태) 식의 자천타천 이름이 봇물을 이뤘다. HC(이회창), IJ(이인제)도 공인받던 한 시절이 있었다. 천하의 정주영 왕회장도 JY를 간절히 원했지만 정치판에서 불통이었다. 정몽준 의원은 MJ, 나경원 의원은 Na를 위해 요즘 열심히 자가발전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화합(Great Harmony)의 GH를 바랐던 걸 봐도 정치적 비중으로만 얻어지는 이름은 아닌 듯하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 한반도 남쪽을 주름잡던 3김인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과 나머지 반쪽을 호령하는 김정일을 합쳐 4김인 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YS와 DJ의 결합으로 동반상승을 기대했지만 긍정적인 효과만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반대했다. 아테네 민주주의같이 선거 말고 제비뽑기하자는 데 반대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에서다. 이니셜로 보니 YS와 DJ의 관계가 새삼스럽고 독특하다.
이러한 이니셜이 실용적이며 존칭도 비칭도 아니면서 직함과 애증에서 자유로워 유교적인 우리 정서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남발하다가 세종대왕이 SJ대왕, 충무공이 SS장군처럼 될까봐 두렵기는 하다. “엠티(MT)나 갈까?”, “시디(CD)는 있어?”처럼 엉뚱하게 들리면 또 어떡하나. 각각 모텔과 콘돔이라니, 주의를 요하는 이니셜이다.
YS, DJ, JP. 이 정치 9단들에 붙은 별칭은 백범, 해공, 몽양처럼 국민적 필요의 산물이었다. 불러 달라 떼써 익숙해진 이름이 아니다. 본명보다 절대적인 호명인 DJ는 이니셜 마케팅이 아닌, DJ 자신의 정치 상황 안에서 기호화된 산물이다. 생사를 넘어 이미 DJ는 ‘민주화’의 기호로서 존재 내용을 갖는다. DJ 서거로 물리적인 3김시대가 폐막한 이후에도 한동안 그럴 것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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