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DJ가 DJ일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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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DJ가 DJ일 수 있는 이유

  • 승인 2009-08-19 11:46
  • 신문게재 2009-08-20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JP는 재즈 연주자(재즈 플레이어), DJ는 디스크자키, YS는 정원 앞에서 쓸모없어진 물건을 파는 야드 세일. 그런데 이렇게 쓰면 대부분 3김씨로 이해한다. 알파벳 약칭은 5·16 후 기자들이 젊은 군인들에게 전통 존대도 싫고 막 부르기도 뭣해 고안한 것이 시발인데…


『JP칼럼』까지 낸 JP(김종필)가 이에 관한 한 원조다. 공화당 거물급들은 HR(이후락), SK(김성곤), TS(김택수)로 불렸다. 이런 약칭을 활성화시킨 3김의 거산, 후광, 운정 등 제법 고태가 나는 호는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희미해졌다. 그게 셋붙이 계피떡처럼 붙어 DJP(김대중-김종필),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로도 부족해 북쪽 지도자를 끌어들여 DJI까지 나왔다. 박정희는 ‘President Park’을 줄여 PP였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에겐 쓸 엄두가 안 났다. ‘중수’라는 호도 쓰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MH라는 기호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니셜이 시대를 풍미한 정치력의 반증이라는 면에서 예외이며 의외다.

유력 정치인의 상징성이 부러워 HK(한화갑), CJ(박찬종), JK(김중권), JC(이종찬), DY(정동영), KT(김근태) 식의 자천타천 이름이 봇물을 이뤘다. HC(이회창), IJ(이인제)도 공인받던 한 시절이 있었다. 천하의 정주영 왕회장도 JY를 간절히 원했지만 정치판에서 불통이었다. 정몽준 의원은 MJ, 나경원 의원은 Na를 위해 요즘 열심히 자가발전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화합(Great Harmony)의 GH를 바랐던 걸 봐도 정치적 비중으로만 얻어지는 이름은 아닌 듯하다.

80년대만 해도 DJ를 DJ라 하지 않았다. 이름 석 자마저 금기였을 때는 신문에 ‘(동교동계) 재야인사’로 쓰였다. 대통령을 본격적인 코미디 소재로 삼았던 것은 DJ정권 이후이고 만평·만화에 대통령이 정식 등장한 것은 노태우 정권부터다. 현직 재임을 전후해 의도적으로 띄워 정착에 성공(?)한 사례는 이명박 대통령의 ‘MB’가 아닌가 한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 한반도 남쪽을 주름잡던 3김인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과 나머지 반쪽을 호령하는 김정일을 합쳐 4김인 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YS와 DJ의 결합으로 동반상승을 기대했지만 긍정적인 효과만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반대했다. 아테네 민주주의같이 선거 말고 제비뽑기하자는 데 반대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에서다. 이니셜로 보니 YS와 DJ의 관계가 새삼스럽고 독특하다.

이러한 이니셜이 실용적이며 존칭도 비칭도 아니면서 직함과 애증에서 자유로워 유교적인 우리 정서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남발하다가 세종대왕이 SJ대왕, 충무공이 SS장군처럼 될까봐 두렵기는 하다. “엠티(MT)나 갈까?”, “시디(CD)는 있어?”처럼 엉뚱하게 들리면 또 어떡하나. 각각 모텔과 콘돔이라니, 주의를 요하는 이니셜이다.

YS, DJ, JP. 이 정치 9단들에 붙은 별칭은 백범, 해공, 몽양처럼 국민적 필요의 산물이었다. 불러 달라 떼써 익숙해진 이름이 아니다. 본명보다 절대적인 호명인 DJ는 이니셜 마케팅이 아닌, DJ 자신의 정치 상황 안에서 기호화된 산물이다. 생사를 넘어 이미 DJ는 ‘민주화’의 기호로서 존재 내용을 갖는다. DJ 서거로 물리적인 3김시대가 폐막한 이후에도 한동안 그럴 것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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