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송진우와 일문일답.
▲동국대 졸업 후 어린 나이인 1989년 빙그레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선수생활을 시작했는데 벌써 21년이 흘렀다. 선수생활 욕심은 크게 없어서 7년 정도를 예상했는데, 어떻게하다보니 세곱절이나 하게 됐다.(웃음) 입단 후 좋은 지도자와 선배, 구단을 만나, 의미있는 프로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젠 새로운 시작이다. 좋은 지도자가 되기위해 노력하겠다.
-오랜시간 선수생활을 가능케한 힘은 어디서 나왔나.
▲한국 프로야구가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선수생명이 전반적으로 길어졌다. 좋은 시대에 태어난 덕이 크다. 타고난 몸 상태와 이를 유지하게한 피나는 노력이 보태졌다. 1997~1998년 시련의 시기를 잘 견뎌낸 이후, 즐기는 야구를 할 수 있게됐다.
-가장 기억에 남았거나 힘들었던 순간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물론 1997년부터 2년간이다. 타 구단 선수들로부터 `공이 다 훤히 다보여, 치기 쉽다'는 평가를 받았고, 성적도 나빴다. 운동을 그만둬야할 지를 심각히 고민했다. 그 해 아리조나 전지훈련에서 체인지업을 익혔고, 다음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감동적인 순간은 당연히 1999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때다. 잠실 롯데 전에서 임주택에게 역전안타를 맞은 후, 용병 로마이어가 재역전 득점에 성공했을 때 이상군 등 모든 고참선배들과 눈물을 흘린 기억이 아련하다.
-내년부터 지도자연수를 떠나는데, 향후 계획은.
▲아직 확실히 결정난 것은 없지만, 일본으로 건너가 한수위의 야구를 배우는 한편, 한국 야구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 지도자가 갖춰야할 완벽한 틀은 없다고 보기에, 무엇보다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구단이 등번호 21의 영구결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21번이 갖는 의미는.
▲아마야구 시절부터 21번을 달았는데, 유난히 이 번호가 좋았다. 빙그레 시절 초기에는 1번을 달았지만, 1년 뒤 운좋게 21번을 달게 됐다. 월급날도 21일이고, 21년간 선수생활을 했고, 아무튼 21번은 내게 행운의 숫자다. /이희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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