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 |
사업추진을 주도한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동의보감 등재와 관련된 국내 일각에서의 견제는 물론, 동양의학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은근한 질투 등 안팎으로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도움을 주고, 수고한 많은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동의보감의 본격적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는 지난 2006년 시작됐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 보건복지가족부의 지원을 받는 동의보감 기념사업추진단이 출범되고 등재작업이 본격화됐다. 동의보감은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유네스코에 등재를 신청한 이후 이번에 최종 확정됐다.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등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가장 큰 의미는 세계가 우리민족의 고유 의학인 한의학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인정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현대 한의학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는 산업화 가능성이다. 동의보감의 처방은 지금도 한의계에서 많은 처방들이 쓰이고 있다. 사실 이런 부분이 등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시 말하면 현대서양의학과 함께 일선 의료현장에서 동의보감은 살아있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16세기와 17세기 최고 명의 허준 선생의 합작품이다. 내의원 주도로 조선 초기 최대 백과 사전 중 하나인 `의방유취'를 비롯해서 우리나라 환자와 우리나라 약재에 포커스가 맞춰진 `향약집성방', `의림촬요' 같은 다양한 의서들이 총망라되었으며 허준 선생의 독자 처방이 곳곳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86종에 이르는 중국의서는 물론 16세기 이전에 동북아 지역에서 출간되고 구전되어 오던 한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과 중국판과 일본판, 한글판 등이 줄줄이 발간되었다니 당대 의학분야의 `바이블'이요, 동북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의학백과사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동의보감이 쓰여진 시기는 우리나라 의학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반만년 역사상 우리 민족의 의학이 이처럼 융성했던 시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전쟁 상황과 허준이라는 불세출의 `한의사'가 동시대에 존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안타까운 것은 이후 한의학은 상당기간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선은 동의보감이 워낙 뛰어난 의서이다 보니, 더 이상 `연구'할 필요성이 적어진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꼽는다. 이후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해방이후 혼란기 등을 거치면서 한의학은 최고의 위기를 맞게 된다. 현대과학과 진단기기로 무장한 서양의학의 강력한 도전에 샌드위치 신세가 되면서 한의학은 한동안 잊혀진 의학이었다.
이런 한의학이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는 계기는 80년대 이후다. 80년대를 전후해서 전국에 한의과 대학이 설치되면서 한의학은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된다. 양질의 한의학 인력이 양성되고 한의학이 본격적으로 제도권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인 연구도 시작됐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한의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침과 뜸, 한약, 진단, 사상체질, 문헌정보화 등 한의학 전반에 대한 국가적인 연구가 속속 출범했다.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는 이런 전반적인 한의학 분야 연구개발 노력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다. 한의학이 앞으로 17세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인지 아니면 몰락할 것인지는 국가와 국민의 의지에 달렸다.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축하와 함께 우리나라 민족과 수 천 년 동안 동고동락을 해온 한의학의 제2전성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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