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효 대전시장 |
언제부터인가 국책사업이란 게 지자체들 갈등 조장하는 경연장으로 전락했다. 애당초 예정지역이 지정돼 있었는데 정치력이 센 지역에서 빼앗으려하니 공모를 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변칙 플레이가 된 것이다.
자기부상열차 실용화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업은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 산하기관인 인천공항관리공단이 인천과 공동 제안서를 제출해 가져갔다. 연간 25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인천공항철도와의 중복 투자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로봇랜드는 더 어처구니없다. 인천과 경남 마산 2곳을 복수 선정하고는 당초 취지와 달리 로봇 놀이동산을 만들려고 한다. 사업타당성 때문에 민자유치가 걸림돌이란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 모두가 국가의 이익이나 예산의 효율적 투자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이해타산의 결과다.
정권이 바뀐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세운 계획을 그대로 물려받아 아무런 재검토 없이 첨복단지 공모를 진행했다. 2030년까지 5조 6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했지만 어떤 기능에, 얼마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지 실체가 없는 계획이었는데도 따져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가 과연 첨단의료산업을 육성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공모 결과도 납득할 수 없다. 공모 과정에서 모든 지자체가 우려했던 그대로 결과가 나왔다. 막강한 정치력의 대구·경북,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생명과학단지를 육성하고 있는 충북 오송으로 입지가 결정됐다. 한 곳에 집적시키겠다던 당초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는 제안서 제출 기한을 느닷없이 1주일 연기하고, 특정 지자체에는 친절하게 제안서를 고쳐 다시 내라고까지 했다. 분하고 원통하다. 하지만 이대로 낙담하고만 있을 수만은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듯이 실패도 소중한 자산이다. 이번처럼 150만 시민 모두가 합심해서 노력했던 적이 없다. 이번처럼 대덕특구가 대전과 밀접하게 협력했던 적도 없다. 잃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많은 경험도 얻었다. 시민들의 열정과 대덕특구의 저력을 새삼 확인하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는 대덕특구만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단 기간 내에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 같은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반드시 입증시킬 것이다.
대전은 정부의 첨복단지 조성과 무관하게 실질적인 첨복단지의 핵심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복수선정에 따라 대구와 충북은 생존을 위한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됐고, 결국 두뇌집단인 대덕특구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이미 전국의 의료클러스터들과 상생 협력할 수 있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한국뇌과학연구원, KAIST와 서울아산병원의 연구병원 등을 조기에 가시화하면 대한민국 첨단의료산업의 허브로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전의 첨복단지 후보지였던 신동지구도 계획대로 개발을 추진하되 인근 대동·금탄지구까지 합쳐 495만~660만㎡ 규모로 확장할 생각이다. 특히 이 지역은 정부의 금강살리기가 추진되는 곳이어서 수변을 활용한 쾌적한 복합 다목적 산업단지 개발이 가능한 이점이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전적으로 대덕특구의 연구개발 성과 덕분이다. 전 국토가 그 혜택을 받고 있다. 이제 대덕특구의 연구개발 성과를 우리 힘으로 산업화시키고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일만이 남았다.
와신상담, 쓰디쓴 쓸개를 씹으며 훗날을 기약한다는 말처럼 더 나은 내일, 더 큰 일을 위해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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