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규]남자, 요리로 디자인을 말하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오치규]남자, 요리로 디자인을 말하다

[문화초대석]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

  • 승인 2009-08-16 13:42
  • 신문게재 2009-08-17 20면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
오늘도 맛있는 디자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가끔은 요리하는 남자다.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
어쩌다 손수 준비하는 상차림이 내게는 또 하나의 디자인이다. 나름 또 다른 삶에 대한 염원이 있어 가르치는 일 틈틈이 작품도 할 겸, 한 갓진 산자락에 터를 잡고 전원생활을 즐겨보겠다는 욕심을 부려보았는데 그 탓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밥상을 손수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은 밥상을 손수 차리다 보니 관점이 달라졌다.

관점이 달라지니 상차림의 의미도 달라졌다. 늘 누군가 해주던 밥상을 받아먹다 보니 음식을 준비한 과정보다는 그저 고픈 배를 채우겠다는 일념에 나올 음식이나 채근하곤 했는데, 스스로 준비하다 보니 음식이전에 상차림의 과정 하나하나가 나름 다 컨셉트가 있고 의도가 있는 새로운 놀이이자 창작의 과정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같은 밥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새로운 경험이 음식을 준비하는 귀찮은 일을 매일매일 새로운 즐거움이 넘치는 창조작업으로 바꾼 것이다.

디자인의 눈으로 보면 밥상은 캔버스가 된다. 다양한 재료 중에 메인 재료가 정해지면 오늘 아침의 테마가 설정 된다. 찜이 될지, 무침이 될지, 국이 될지. 이 테마에 따라 밥상의 컨셉트가 정해지고 이 컨셉트는 나머지 반찬 구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디자인인 것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재료와 양념이 한데 어우러져 저마다 개성 넘치는 맛과 빛깔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탄생해 전시 되는 밥상은 보이는 그대로 맛있는 디자인 전시회가 된다.

나는 가끔은 요리하는 남자다. 요리를 디자인 놀이이자 창조작업이라는 매력으로 받아들인 탓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영향도 있다. 어린 시절 기억에도 어머니의 손맛은 가히 일품이셨다. 자주 음식을 나누던 동네 분들 사이에서도 우리 어머니의 손맛은 늘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러니 나의 요리에 대한 관심이나 실력은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나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자질도 어쩌면 어머니의 능력이 그대로 발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형제들이 모여 이야기하다 보면 늘 어머니의 음식이야기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런 실력이 어디 우리 어머니뿐이겠는가? 대부분 한국의 어머니야 말로 진정 맛있는 디자인의 대가들이다.

요즘 음식은 물이나 양념의 양을 눈금이 표기된 용기며 계량 컵, 저울 등으로 정확하게 저울질 해가며 만든다. 그야말로 음식이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때문인지 요즘 음식은 화려하지만 깊은 맛이 덜한 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재료나 양념의 사용이 눈대중이요 손대중이면서도 그 맛과 개성은 집집마다 같은 집이 하나도 없다. 또한 똑같은 재료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그 맛은 수십 수백 가지 맛으로 창조되고 끝없이 변형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생활의 달인이요 요즘 시대가 추구하는 진정한 창의형 인재인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허생전', `양반전', `호질'을 쓴 연암 박지원은 60세 되던 1796년 2월 15일 아들 종의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고추장을 작은 단지로 하나 보낸다. 사랑에 놓아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겠다. 이것은 내가 손수 담근 것인데, 아직 잘 익지는 않았다.” 이것으로 우리는 천하의 박지원이 요리를 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요리는 생각보다 즐겁다.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맙고 또 그 모습이 행복한지는 해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남자가 무슨 요리냐고 타박할 이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소프트 파워가 우대받는 세상이다. 소프트 파워는 오랜 고정관념과 익숙함을 벗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능력이다. 때문에 대부분 기업이 소프트 파워를 얻기 위한 혁신을 외치고 있다. 그러한 대세의 선두에 디자인이 있다. 이제 디자인은 생활이며 요리는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창조와 혁신을 원한다면 어머니를 배우자. 디자인을 요리하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2. "내 아기 배냇저고리 직접 만들어요"
  3. "우리는 아직 청춘이야"-아산시 도고면 주민참여사업 인기
  4. (주)코엠에스. 아산공장 사옥 준공
  5. 아산시인주면-아름다운cc, 나눔문화 협약 체결
  1. (재)천안과학산업진흥원, 2024년 이차전지 제조공정 세미나 개최
  2. 천안문화재단, '한낮의 클래식 산책-클래식 히스토리 콘서트' 개최
  3. 충남 해양과학고 김태린·최가은 요트팀 '전국체전 우승'
  4. 천안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대응 총력
  5. 천안시, 직업소개사업자 정기 교육훈련 실시

헤드라인 뉴스


`15억 원 규모 금융사기`…NH농협은행서 발생

'15억 원 규모 금융사기'…NH농협은행서 발생

NH농협은행에서 15억 원대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NH농협은행은 25일 외부인의 사기에 따른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사고 금액은 15억 2530만 원, 사고 발생 기간은 지난해 3월 7일부터 11월 17일까지다. 손실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해당 차주는 서울의 한 영업점에서 허위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고 부동산담보대출을 과도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이번 사고가 외부인에 의한 사기에 따른 것으로 보고, 수사 결과에 따라 형사 고소나 고발을 추가로 검토할 예정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수사기관..

이장우 대전시장 "유성구 트램으로 더 발전 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 "유성구 트램으로 더 발전 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은 자치구 방문행사로 대전 발전의 핵심 동력인 유성구를 찾아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을 통한 유성 발전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25일 유성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정용래 유성구청장과 구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선 8기 2년간의 성과를 공유하고 자치구 현안과 구민 건의사항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28년만에 착공을 앞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을 설명했다. 이 시장은 "시에서 했던 일들 중 가장 무기력했고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고 평가받던 도시철도 2호선 사업이 기본계획이 수립된지 28년만인 다음달 말..

충청권 기름값 2주 연속 오름세 `이번주가 가장 싸다`
충청권 기름값 2주 연속 오름세 '이번주가 가장 싸다'

충청권 기름값이 2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특히 다음 달 유류세 인하 폭 축소가 예정되면서 운전자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2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넷째 주(20∼24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직전 주 대비 리터당 1.47원 상승한 1593.06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유도 0.83원 오른 1422.31원으로 나타났다. 10월 둘째 주부터 2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지만, 상승 폭은 다소 둔화됐다. 대전·세종·충남지역 평균가격 추이도 비슷했다. 이들 3개 지역의 휘발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4 전국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대회 ‘성료’ 2024 전국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대회 ‘성료’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