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 |
관점이 달라지니 상차림의 의미도 달라졌다. 늘 누군가 해주던 밥상을 받아먹다 보니 음식을 준비한 과정보다는 그저 고픈 배를 채우겠다는 일념에 나올 음식이나 채근하곤 했는데, 스스로 준비하다 보니 음식이전에 상차림의 과정 하나하나가 나름 다 컨셉트가 있고 의도가 있는 새로운 놀이이자 창작의 과정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같은 밥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새로운 경험이 음식을 준비하는 귀찮은 일을 매일매일 새로운 즐거움이 넘치는 창조작업으로 바꾼 것이다.
디자인의 눈으로 보면 밥상은 캔버스가 된다. 다양한 재료 중에 메인 재료가 정해지면 오늘 아침의 테마가 설정 된다. 찜이 될지, 무침이 될지, 국이 될지. 이 테마에 따라 밥상의 컨셉트가 정해지고 이 컨셉트는 나머지 반찬 구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디자인인 것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재료와 양념이 한데 어우러져 저마다 개성 넘치는 맛과 빛깔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탄생해 전시 되는 밥상은 보이는 그대로 맛있는 디자인 전시회가 된다.
나는 가끔은 요리하는 남자다. 요리를 디자인 놀이이자 창조작업이라는 매력으로 받아들인 탓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영향도 있다. 어린 시절 기억에도 어머니의 손맛은 가히 일품이셨다. 자주 음식을 나누던 동네 분들 사이에서도 우리 어머니의 손맛은 늘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러니 나의 요리에 대한 관심이나 실력은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나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자질도 어쩌면 어머니의 능력이 그대로 발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형제들이 모여 이야기하다 보면 늘 어머니의 음식이야기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런 실력이 어디 우리 어머니뿐이겠는가? 대부분 한국의 어머니야 말로 진정 맛있는 디자인의 대가들이다.
요즘 음식은 물이나 양념의 양을 눈금이 표기된 용기며 계량 컵, 저울 등으로 정확하게 저울질 해가며 만든다. 그야말로 음식이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때문인지 요즘 음식은 화려하지만 깊은 맛이 덜한 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재료나 양념의 사용이 눈대중이요 손대중이면서도 그 맛과 개성은 집집마다 같은 집이 하나도 없다. 또한 똑같은 재료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그 맛은 수십 수백 가지 맛으로 창조되고 끝없이 변형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생활의 달인이요 요즘 시대가 추구하는 진정한 창의형 인재인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허생전', `양반전', `호질'을 쓴 연암 박지원은 60세 되던 1796년 2월 15일 아들 종의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고추장을 작은 단지로 하나 보낸다. 사랑에 놓아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겠다. 이것은 내가 손수 담근 것인데, 아직 잘 익지는 않았다.” 이것으로 우리는 천하의 박지원이 요리를 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요리는 생각보다 즐겁다.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맙고 또 그 모습이 행복한지는 해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남자가 무슨 요리냐고 타박할 이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소프트 파워가 우대받는 세상이다. 소프트 파워는 오랜 고정관념과 익숙함을 벗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능력이다. 때문에 대부분 기업이 소프트 파워를 얻기 위한 혁신을 외치고 있다. 그러한 대세의 선두에 디자인이 있다. 이제 디자인은 생활이며 요리는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창조와 혁신을 원한다면 어머니를 배우자. 디자인을 요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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