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액션.화끈한 공포.화기애애 코미디 어느 것을 고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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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액션.화끈한 공포.화기애애 코미디 어느 것을 고를까요

  • 승인 2009-08-13 18:10
  • 신문게재 2009-08-14 12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 퍼블릭 에너미
감독: 마이클 만. 출연: 조니 뎁, 크리스천 베일, 마리온 코티아르.

<줄거리>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은행을 터는 존 딜린저. 하지만 그는 여성 인질이 추울까 코트를 벗어주고 클럽에서 코트를 받아주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 인물이다. 수사 당국은 이 전설적 은행강도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하고 냉철한 요원 맬빈 퍼비스에게 사건을 맡긴다.

“날 잡으려면 모든 은행을 24시간 감시해야 할 걸.” 경찰을 향해 냉소를 날리는 이 남자. 존 딜린저다. 1930년 대공황시대, 경찰관 여럿을 살해했고 은행 20여 곳을 털었으며 탈옥까지 두 차례나 성공한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놀라운 건 1933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0개월 사이, 이 화려한 범죄 경력의 대부분을 쌓았다는 사실이다.

은행을 털면서도 여성 인질이 추울까 자신의 코트를 벗어 건네준 일화며, 붙잡히고서도 지방 검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미소 띤 얼굴로 사진 찍는 이 무법자에 대중들은 반했다. 멋쟁이인데다 건방지고 대담무쌍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이 매력적인 ‘나쁜 남자’는 신화였다. 할리우드가 갱스터인 그를 모델로 한 영화로 넘쳐난 것도 당연했다.

영화 ‘퍼블릭 에너미’에서도 딜린저는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제집 드나들듯 은행을 턴 강도를 로빈후드 대하듯 취급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이클 만 감독은 그를 적극 옹호한다. 그는 화려한 아르누보 건물 안에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위스키를 마시고 외로운 여자를 유혹한다. 미래가 없는 남자, 고독하고 낭만적인 사내다.

‘퍼블릭 에너미’는 딜린저와 그를 잡기 위한 수사반의 구도로 진행된다. 조니 뎁과 크리스천 베일 버전의 ‘추격자’인 셈. 베일은 수사반의 리더 맬빈 퍼비스 역을 맡았다. 딜린저가 처음 은행을 털기 시작했을 때부터 붙잡혔다 탈출하고 다시 은행을 털다 체포될 때까지 영화는 딜린저의 활약상과 이를 추적하는 퍼비스를 따라간다. 이 모든 장면들을 인물에 대한 탐구이자 시대에 대한 재현 위에서 담아낸다.

마이클 만 감독은 딜린저의 기운을 포착하는데 집중한다. 카메라는 지켜보는 자리가 아니라 아예 현장의 서 있으려 애쓴다. 몇몇 역사적 사실은 그 장소에 직접 가서 찍었다. 그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고 주인공이 되어 그의 심리를 느껴보라는 주문 같다.

딜린저는 클라크 게이블이 출연한 갱스터 영화 ‘맨해튼 멜로드라마’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다 수사 요원들의 총격에 사살됐다. ‘맨해튼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은 딜린저에게서 영감을 얻어 그를 베낀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마이클 만 감독도 그렇게 믿고 있다. 자신을 모델로 한 영화를 보고 나오다 사살된 딜린저. 죽음까지도 영화적이었다.

■ 아이스 에이지 3: 공룡시대
감독: 카를로스 살다나, 마이크 트메이어. 애니메이션

<줄거리>
매머드 매니와 엘리는 아기 매머드 탄생 준비에 호들갑이고 소외감을 느끼던 시드는 자기도 아기를 갖고 싶다는 욕심에 동굴에서 알 세 개를 훔치고 만다. 매니는 돌려주라고 설득하지만 시드는 자기가 키우겠다고 고집 부리는데, 곧 세 마리의 아기 공룡이 알에서 깨어난다.

빙하기에 웬 공룡? 매머드에 공룡이라니. 그걸 따지는 ‘쪼잔한’ 당신은 이 영화를 볼 자격이 있다. 당근(당연히), 어린이가 보는 영화인데 과학적 사실을 호도해서야 되겠는가. 걱정 마시라. 영화는 얼음 아래 미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더니 사라진 줄 알았던 공룡세계가 존재하고 있더라는 설정이다.

매머드 부부 매니와 엘리, 나무늘보 시드와 검치호랑이 디에고. 빙하기 친구들이 다시 돌아왔다. 3편에서의 모험은 엄마가 되겠다고 공룡알을 훔쳤다가 엄마 티라노 사우르스에게 잡혀간 시드를 구해야 한다. 거대한 공룡들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쫓겨 다녀야 할 판이다.

이 위험한 모험에 애꾸눈 벅이 합세한다. 벅은 공룡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무서운 루디와 사투를 벌였다고 큰소리치는 족제비. 루디에게 한쪽 눈을 빼앗긴 뒤 복수를 꿈꾼다. 사연은 비장하지만 독특한 정신세계에서 나오는 허풍과 잘난 척, 혼자 놀기의 진수를 선보이며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도토리만 쫓아다니는 다람쥐 스크랫은 짝을 만난다. 스크랫과 똑같이 도토리에 목숨을 거는 강력한 라이벌 암컷 스크래티다. 티격태격 거리다 정드는 둘의 로맨스가 재미를 배가시킨다. 도토리 쟁탈전을 벌이다 은은한 달빛 아래 탱고를 추는 둘의 모습이 웃음 포인트.

전편을 압도하는 롤러코스터 액션영화로 탄생했다. 액션신 만큼은 훨씬 업그레이드됐다. 티렉스와의 대결을 비롯해 무수한 벨로시랩터와의 대결은 누가 봐도 ‘쥬라기 공원’이다. 또 익룡들이 펼치는 추격전은 전투기들의 스피디한 공중전을 연상시킨다. 딱 ‘진주만’이다.

‘아이스 에이지 3’은 시리즈 중 처음으로 시도된 3D 입체영화다. 2D로 봐도 괜찮다 싶지만 이왕이면 입체영화관을 찾아 감상하기를 권한다. 스크래티가 처음 등장할 때 배경으로 꽃잎이 날아다니는 장면에서는 진짜 손을 뻗어 꽃잎을 잡고 싶어질 만큼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디에고가 먹잇감을 쫓다 놓치고는 헉헉대는 장면, 시드가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공룡알을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장면 등 3D 효과가 주는 액션신의 긴박감도 상당하다.

실컷 웃다보면 새끼를 위해 어떠한 위험도 불사하는 매머드 커플에게서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친구를 위해 사지에 뛰어드는 주인공들의 우정에선 진한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불신지옥
감독: 이용주. 출연: 남상미 류승용 김보연 심은경

<줄거리>
동생이 사라졌다. 집으로 내려간 희진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동생 소진을 찾아나서지만 교회에 다니는 엄마는 기도만 하면 소진이 돌아올 거라고 한다. 며칠 뒤 소진의 아파트에서 한 여자가 자살한다. 그녀는 유서에 소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또 시체가 발견된다.

‘불신지옥’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맹신(盲信)이다. 제목은 기독교를 겨냥한 듯 보이지만 영화 속의 믿음은 보편적인 것이다. 신내림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종교적 관점이 다를 뿐이다. 신앙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맹신은 ‘아무것도 믿을 게 없는’ 현실에 대한 반어법이다. 믿음 앞에 나약하기만한 인간, 그 아래 숨어있는 은밀한 힘이 ‘불신지옥’의 시작이자 공포다.

섣부르게 공포를 안겨주려고 덤비지도 않고, 공간과 소리와 빛과 배우들의 연기를 적절히 조화시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잔잔하지만 꽤 무섭다. 외양은 잇단 죽음을 쫓는 미스터리물이다. 하지만 자살인지 살인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무당의 자백을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만 여러 증언으로 덧칠해진 이야기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관객마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하는, 불신의 지옥으로 몰아가는 시나리오가 탄탄하다.

영화적 장치를 충분히 활용해 공포와 긴장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도 좋다. 돋보이는 게 복도식 아파트의 창문 활용이다. 복도식 아파트의 창문은 사람의 키보다 낮아 방 안에서 보면 복도를 오가는 사람의 그림자가 또렷하다. 일상적이어서 더 섬뜩할 수 있는 그림자 이미지를 포착해낸 건 신선하다. 또 방범창을 통해 만들어낸 상황이나 묘사도 오싹하다. 건축학과 출신 감독답게 지하실과 욕실 등의 구조적인 비주얼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특히 휴대폰 플래시 기능에 의존해 공간을 비추는 지하실 장면은 거친 화면 속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남상미, 류승룡, 김보연, 심은경, 문희경, 장영남 등 연기파 배우들이 모였다는 건 큰 강점이다. 문희경의 일상 속의 잔혹함, 방범창을 통해 비치는 장영남의 섬뜩한 비주얼은 특히 인상적이다. 맹목적인 믿음에 사로잡힌 김보연의 흐릿한 눈빛은 영화에 묘한 공포감을 퍼뜨리고, 점점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문제는 마무리다. 이야기를 벌여놓고는 마침표로 맺지 못한 건 아쉽다. 감독이 어떤 이유로 이런 결말을 가져왔는지 짐작되기는 하나 짐작일 뿐이다. 관객에게 의문을 던지는 영화라면 또 모르지만 ‘불신지옥’은 이야기를 정리해주는 게 미덕인 영화다. 한국적 정서에서 새로운 공포를 찾아낸 괜찮은 공포영화, 그래서 더 아쉬운 ‘불신지옥’이다./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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