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철 작가 |
이번에는 달개비꽃이다. 어디서 날아온 홀씨였을까. 대도시 한 복판 신호등 바로 옆에서 앉은뱅이 굽은 등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무수한 인파들의 구두창이 종종걸음 치는 그 사이로 연초록 대궁이 아슬아슬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발이 없다. 공사판 포클레인이 무심히 내리찍으면 흔적 없이 죽는다. 망아지 키스로 황홀한 젊은 연인들의 하이일 뒤축에도 우두둑 온몸이 꺾일 그 식물성 생명이 번개돌이 일상 속에서 뻘쭘하게 버티고 있었다.
딱딱한 시멘트벽으로 가로막히면 먼지 무더기 속으로 뿌리털 뻗으면서 도시의 일상을 견디는 것이다. 승용차와 휴대전화, 네온사인과 사이키, 스와핑과 물침대와 포르노와 콘돔으로 깔깔대는 불륜의 자본주의 한 복판에서 달개비 혼자 파르스름한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스피드 세상을 무심히 견디면서 탄소를 받고 엽록소를 내뿜는 것이다. 서늘하다.
다음으로 고양이 이야기다. 쓰레기통에서 일회용 비닐을 뜯어먹던 그 고양이는 사과박스나 철조망에까지 거침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만나기만 하면 그르릉그르릉 발톱을 세웠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아주 짧게 눈이 마주치면서 내가 재빨리 대구포 한 조각 건네주자 그의 적개심이 눈사람처럼 스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볼 비벼 아랫배 더듬는 따뜻함에 취하면서 얼핏 콘크리트 사이의 달개비꽃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였나, 고양이는 다시 보이지 않았고 나는 다시 혼란한 일상에 적응하느라 가뿐 숨을 쉬고 있었다. 집 나간 아이를 찾아다녔고 자전거에 치여 전봇대 옆에 주저앉았는데 다시 중국집 쓰레기통 옆에서 고양이를 재상봉한 것이다. 극적인 상봉에 감격하며 절룩절룩 양팔을 벌렸지만 아, 고양이가 이글이글 적개심을 태우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서다가 내 뺨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 후 나는 웬만한 악수를 믿지 않는 편이다.
쌍용자동차. 76일의 긴 싸움이 막을 내렸다. 피서인파들 스냅이 이국 풍경처럼 화사하게 `즈이끼리 라인 만들기' 행복에 희희낙락 취할 즈음이다. 각종 여름나기 기획 상품들이 뽀얀 속살 실루엣으로 소비 잔치를 벌이던 화려한 휴가 시즌이다. 그들은 소통 없는 여름 땡볕을 받았고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헬리콥터에서 뿌려대는 최루액을 `농약 받는 잡초'처럼 견뎠고 그리고 형제들의 몽둥이까지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쓰러진 몸으로 날아오는 몽둥이 풍경. 아,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장면 같다. 마침내 막이 내리면서 유령의 나라 같은 화장실 배경이 드러난다. 그리고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가장들의 낙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갈비가 먹고 싶다' `가족들, 고생 시켜서 미안해.' 그리고 이 땅의 아버지들이 법의 절벽 앞에 아슴아슴 서게 되었다. 이제 세상에서 그들을 `흥부의 알몸'으로 끌어안아야 할 때다. 잃어버린 행복을 나누기 위해 관용의 그늘이 절실한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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