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창곤 프랑스문화원장 |
높기만 했던 관공서의 문턱이, 그들이 누렸던 전횡의 무게에 반비례해서 큰 폭으로 내려앉았던 점은 새로 귀국해 온갖 서류들을 재발급 받아야 했던 나에게는 공짜로 동승한 민주화의 위력을 실감케 했었고, 배짱 내밀고 장사했던 은행이나 병원종사자들이 나긋나긋한 서비스 제공자의 위치로 “전락”한 모습도, 십 수 년 전 한국을 떠날 때 우리사회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각 개인의 권리가 목소리의 강약으로 획득되는 것 같은 인상과, 몇 천원으로 해결되는 병원방문이 마치 사람들의 일상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모습은, 공권력의 부재나 선심성의 의료보험이 미래에 야기할 폐해를 미리 짐작케 했었다.
경제적 성장이 일구어낸 우리사회의 또 다른 면모는, 우리 선인들이 가졌던 돈에 대한 복잡한 콤플렉스가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이제는 거꾸로 그 위력을 드러내는 게 미덕인 자본지상주의가 천연덕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일간지들의 한 면이 일상적으로 그들의 관심사에 할애되고 있는 점이나, 좀 기발한 아이디어로 부를 축적한 이들의 모습이 “신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이 일간지들의 또 다른 전면을 차지하고 있던 게, 그 당시 신문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변화들이 나에게는 천박함이란 단어로만 요약됐던 것은, 이러한 활황에 동승치 못했던 가난한 유학생의 배 아픔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바로 코앞의 상황을 기억치 못하는 우리사회의 집단 건망증이 우려됐었고 주식투자와 아파트 청약이 어느 사회에서든 너도나도 즐겨할 수 있는 국민 스포츠는 더더욱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경제위기가 이런 광기를 얼마간은 잠재운 듯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던 차세대들의 교육문제는, 그제나 이제나 아무런 해결 고리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부유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들처럼, 아이들 자신의 욕구나 바람(그들의 바람을 표현할 기본적인 능력조차도 우리교육이 제공하고 있는가?)보다는 부모들의 염원들이 더 강하게 부각되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항시 본말이 전도된, 그래서 아이들의 미래를 전혀 준비치 않는 묘한 집단무의식의 최면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본말의 전도는 얼마나 심한지 교사들보다는 사교육담당자들의 목소리들이 득세를 하고 있는 듯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꾼다면, 앞서 방만할 대로 방만해진 사교육 종사자들의 미래를 해결하여야 하는 악순환의 구조에 벌써 들어서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졸업 후 아무런 보장도 해주지 않는 몇몇 대학의 입학에 사활을 건 대한민국 보통가정들의 일상이라면 무엇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비효율의 극치는 요즘 난리인 영어교육의 문제이다. 영어가 움직일 수 없는 국제통용어이고, 땅덩어리도, 자원도 빈약한 우리의 처지에서 공격적인 세계경영이 필요하다는 점은 너도나도 인정하는 점이다. 하지만 유치원 아이들부터 늙수그레한 기업의 중년간부들까지 공히 체험한다는 영어스트레스는 어느 틀에도 맞지 않는 수요의 과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1%도 되지 않을 일류대학의 입학에, 1%도 되지 않을 대기업 입사에 전체가 “올인”하는 국민적 습관은, 1%도 되지 않을 미래영어종사자의 양성에 온 나라의 기운이 속절없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1%에의 진입이 그리 쉽지 않은 일이고, 우리 아이들의 시대에 미적분과 영어 몇 마디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리라는 점을 수긍한다면, “대세”를 거스르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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