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호]버지니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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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호]버지니아에서

[중도마당]안기호 대전극동포럼회장

  • 승인 2009-08-10 14:16
  • 신문게재 2009-08-11 20면
  • 안기호 대전극동포럼회장안기호 대전극동포럼회장
필자는 버지니아대학이 있는 미국의 블랙스버그(Blacksburg)를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해 한 달 가량 머무는 동안 총기사건으로 사망한 32명의 사진과 함께 그들의 이름이 적힌 반원형의 추모비 돌조각이 늘어서 있는 대학 광장 연설대 앞을 둘러보았다.

▲ 안기호 대전극동포럼회장
▲ 안기호 대전극동포럼회장
그 중에 유난히 눈에 띈 것은 한 남학생의 아버지가 추도일에 천릿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아들의 추모비 앞에 놓고 간 애절한 부정(父情)이 담긴 사랑의 편지였다. 비에 젖지 않도록 정성껏 코팅을 한 편지를 보고 있노라니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을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마침 그 전날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았는데 목사님의 설교 말미에 들려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예화가 매우 감동적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들이 성인이 되어 애인이 생겼는데 불행하게도 그 애인이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한다. 유일한 치료 방법이 산 사람의 심장을 먹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던 아들이 용서받지 못할 불효를 저질러 아버지의 심장을 꺼내들고 애인에게 달려가는데 아버지의 영혼이 아들을 향해 “아들아 천천히 가거라. 잘못해 넘어져서 심장이 못쓰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하며 조심하도록 타일렀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헌신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의 예화를 들으면서 문득 나를 극진한 사랑으로 기르셨던 선친에 대한 생각과 손자를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사랑하는 아들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떠올렸었다. 그래서 아들의 추모비 앞에서 한없이 눈물을 삼키며 서 있었을 그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짐을 억제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 한국계 학생의 총기 난사의 희생자들이라 생각하니 무겁게 짓누르는 감정과 주변의 눈총을 받는 듯 한 느낌을 가지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한편 매년 열리는 추도식에서는 사자(死者)들의 영혼을 달래는 촛불 집회가 조용하고 엄숙하게 이루어지긴 하지만 한국인을 원망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추도식을 계기로 장학금 기부가 이어져 많은 성금이 마련되곤 한단다. 남을 용서하고 배려하는 그들의 마음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Excuse me”, “Thank you”를 연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유학생들이 학문을 닦는 것 못지않게 그들의 성숙한 문화를 익혀 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보기도 했다.

워싱턴 D·C에서 발행되는 한국 일간지 H신문의 이민자 칼럼에 실린 글을 읽어 보았다.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월드컵 4강의 신화 창조를 비롯한 야구, 피겨스케이팅 등에서의 승전보는 물론 `메이드 인 코리아'의 우수 제품들이 미국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때마다 우리 교포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여중생 추모 및 쇠고기 수입 반대의 격렬한 촛불 시위 뉴스를 접했을 때는 조국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필자의 말대로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나 국민들 모두가 이해관계에 얽매이거나 감정에 치우쳐 외국에 나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며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실망을 주고 그들의 입지를 좁히는 일은 제발 삼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속의 한국', `글로벌 코리아'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한국인의 세계 진출이 끊임없이 이어지는가 하면 탈북자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국내 이주민 또한 이미 100만 명을 넘어 증가 일로에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이른바 다문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우리의 생활 속에 젖어든 다양한 외래문화를 상호보완적으로 조화롭게 접목 발전시켜 가면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이해·배려·포용·준법 등의 성숙한 시민 의식과 바람직한 행동 양식을 하루 빨리 몸에 익혀야 할 때이며 그것이 곧 우리 후손들에게 훌륭한 문화유산을 물려주기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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