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에서 50년 가까이 젓갈 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심희섭(76·사진)씨. 그는 강경포구에서 활동했던 마지막 객주이자 강경 젓갈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역사의 산증인이다.
심씨는 당시 포구의 모습에 대해 “지금 젓갈 시장 있는 곳까지 배들이 꽉 들어차고, 강경읍내는 몰려든 사람들에 치여서 제대로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또 “강경은 내륙항으로 가장 상류에 있었기 때문에 서울과 대구, 부산 까지 안 가는 곳이 없을 정도 였다”며 “서해 뿐 아니라 전국에서 수산물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모이던 것이 불과 반 세기도 안됐다”고 말을 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창 때 강경포구에는 하루에 200여 척까지도 배가 드나들었고 800명 가까운 하역 노동자들이 일을 했을 정도란다. 또 강경이 본격적인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에도 금강하구둑이 생기기 전까지는 간간이 포구를 드나드는 배들이 있었다 한다.
“객주라는 게 결국은 여기 들어오는 수산물들을 위탁 판매하는 거 아니여. 어찌됐든 하구둑 생기기 전까지는 고깃배가 한 두 척씩이라도 들어오면 내가 맡아서 팔아주고 했으니께.”
심씨는 현재 객주 생활과 함께 시작한 젓갈 상회를 운영하며 사라진 포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곳 젓갈의 유명세는 포구의 쇠락과 함께 시작됐다는 게 심씨의 설명이다.
“처음에 열 집 정도 있었는데 하나 둘 문을 닫더라고. 우리 집하고 한 3군데 정도만 남아 있었지. 한 동안도 한 열 집도 안됐었는데, 다 사라지고 남은 게 없으니 갑자기 젓갈이 유명세를 타면서 한 10년전부터 부쩍 늘었지.”
20대의 젊은 객주에서 반백의 70대 노인이 될때까지 이곳에서 삶을 영위해 온 그는 사라진 포구의 흔적에 대한 아쉬움도 감추지 않는다.
“자연히 그렇게 된 걸 어쩌겄어. 옛날 생각하면 허망하고 허탈할 뿐이지. 그립기도 하지만 이제는 추억도 다 잃어버렸는 걸 뭐. 남아 있는게 하나도 없잖어.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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