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리포트]뱃길 끊긴 천혜의 내륙항... 등대만이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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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경 포구, 사라진 영화 역사의 뒤안길을 가다

  • 승인 2009-08-06 14:20
  • 신문게재 2009-08-07 13면
  • 이종섭 기자이종섭 기자
▲박제화된 풍경 포구엔 잔잔한 강물만이 머물고

지난 5일 찾아간 강경포구에는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로 길 잃은 물살이 밀려와 잔잔히 부딪혀 부서지고 있을 뿐 하루에도 수십 척의 배가 드나들었다던 포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옥녀봉 아래로 포구가 있던 자리 한 켠에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 졌다는 갑문만이 외로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갑문은 밀물이 차 들어오면 해산물을 한 가득 실은 운반선과 함께 가둬 수위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갑문이 물을 가둬 놓고 있는 동안 포구에서는 거간꾼들의 거래와 하역 작업이 이뤄졌던 것이다.

“한창 때는 대단했지. 갑문 안 쪽으로 지금 젓갈 시장 있는 곳 까지 배들이 꽉 들어차 가지고서는 그 위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하역 작업이 끝나면 물때 맞춰서 다시 배들이 나가고 들어가고를 반복했으니까.”

강경포구에서 마지막 객주로 활동했다는 심희섭(76)씨의 말이다. 현재 이 갑문은 완전히 가로 막혀 더 이상 배가 드나들고 싶어도 드나들 수 없는 수해방지용 수문 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한때 서해를 넘나들며 수산물을 실어 날랐을 배들도 이제는 포구를 뒤로하고 제방 위에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한 채 박제화된 모습으로 서 있다. 강경호, 황산호 등 제각기 새겨진 이름을 달고 제방 위에 늘어선 배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전시용으로 세워진 것들이다.

바로 아래 지금은 수상레저타운이 들어서 있는 옛 황산나루터도 흔적을 감추기는 마찬가지다. 인근의 황산포구 등대가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외로이 서서 이 곳이 나루터가 있던 자리임을 힘겹게 말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등대 아래 세워진 안내판은 1915년 세워진 이 등대가 `금강 하류에서 서해의 어물을 싣고 들어오던 어선과 여객선, 충남 서남부에서 세도나루를 통해 나룻배를 타고 건너오던 장꾼들의 야간 운항을 안내해 주던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지주에 설치된 수위표를 통해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한 금강 수위변화와 장마철 홍수로 인한 위험 수위를 표시함으로써 주민들은 안전을 도모했다'고 전한다. 현재 세워져 있는 등대 역시 1987년 황산대교의 건설과 함께 수위관측소가 옮겨지고, 강경과 세도를 잇던 도선 사업이 종료되면서 철거됐다가 지난해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최대 10만명 머물었던 번성기

지금의 금강하구둑에서 강경포구까지는 채 십리가 되지 않는 길이다. 강경이 조선 후기 원산과 함께 2대 포구로 불리고, 대구·평양과 함께 3대 시장으로 꼽히는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 서해의 바닷물이 밀물 때가 되면 이곳 강경을 지나 부여 규암포에 까지 넘나들었고, 이는 금강하구의 수운을 발달시켜 강경이 천혜의 내륙항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한창 번성했던 시기 강경포구에는 밀물 때마다 서해의 수산물을 가득실은 배들이 100여 척씩 정박했고, 충남 뿐 아니라 전국에서 2만~3만 명에 이르는 상인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는 옛 강경포구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돼 있다.

“부여와 은진에선 바다의 조수와 통하게 되어 백마강 아래 진강(鎭江) 일대는 바닷배가 쉬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다. 은진(恩津·강경이 속한 옛 지역명)은 강경(江景) 꾸려간다는 말이 있듯이 강경은 충청도와 전라도 사이에 끼여 있어 바닷사람과 내륙의 사람들이 여리에 모여 교역이 활발했다. 봄과 여름 동안은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느라고 비린내가 포구에 넘치고, 토선(土船)과 딴장이, 당도리선들이 황산과 세도를 마주 나누어진 포구에 담처럼 둘러서서 꽹과리를 쳐댔고 화장(火匠ㆍ배에서 밥 짓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내뿜는 연기로 포구의 하늘은 다시 암회색의 바다였다.”

이렇게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 강경의 인구는 3만 여명에 달했으며, 전국에서 몰려든 상인들을 포함해 오가는 이들을 합하면 최대 1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또 이곳 장시에 모아진 수산물과 소금, 미곡 등은 공주를 지나 부강까지 이어지는 뱃길과 육로를 통해 충청도 일대는 물론 경기도와 전라도 등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객주의 아들로 태어나 강경에서만 70여 년을 살았다는 한영국(71)씨. 그는 “한창 번성하던 때 강경에는 서해안 뿐 아니라 전국에서 나는 수산물이 모여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젓갈이 유명해진 것도 워낙 많은 물량이 거래되다 보니 팔고 남은 물량을 보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염장법이 발달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빛 바랜 사진 속 풍경 처럼 남아 있는 강경의 근대건축물들도 이 곳의 옛 영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일본이 물류의 집산지이자 번성한 상업도시인 강경을 수탈 기지로 삼기 위해 세운 대표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는 한일은행 건물, 또 비슷한 시기 그 물산의 규모 만큼이나 대단한 세를 과시했던 하역 노동자들의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은 이곳의 영욕과 흥망성쇠를 간직한 곳이다.

▲사라진 포구 우어ㆍ황복도 자취를 감추고

그러나 이렇게 번성했던 강경의 포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가장 큰 원인은 내륙 교통의 발달이었다. 1905년과 1914년 각각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놓여진 이후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이곳의 기능은 반감됐고, 1970년대 들어서는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원양어업으로 어선이 대형화되면서 포구에 정박하는 배들이 하나 둘 끊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0년에는 하구둑이 들어서면서 물길과 뱃길을 완전히 막아섰고, 이곳에 다다르는 배도 완전히 끊어졌다. 포구도 자연히 이름만 남게 됐다.

변한 것은 포구의 풍경만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3만명에 가까웠던 강경의 인구는 현재 1만 3000명 안팎으로 줄었다. 1920년대 일찌감치 강경에 들어선 법원과 경찰서 등 사법기관이 올해 초 논산시내로 이전을 추진하려다 주민들의 갈등을 빚었던 것도 이런 쇠락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많을 때는 서해로부터 수십 수백 척의 배가 드나들었다는 이곳의 물줄기는 하구둑이 생긴 이후 과거 조류를 따라 자연스럽게 쓸려내려가던 토사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뱃길 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

한때 이곳을 대표하며 유명세를 탔던 우어회와 황복요리도 지금은 젓갈과 함께 그 명맥만을 겨우 이어가고 있다. 실제 포구와 나루가 사라진 이후에도 한동안 옛 나루터 인근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식당들은 2000년대 초반 하천 정비와 함께 자취를 감췄고, 몇 몇 집들만이 제방위에 현대식 건물로 옮겨 맥을 이어가고 있다. 봄이면 이곳에는 대표적인 회귀성 어종으로 산란을 위해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던 우어(웅어)와 황복 등이 넘쳐났지만, 지금은 하구둑으로 인해 그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수십 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이곳 식당들에서 팔리는 우어와 황복 등도 현재는 하구둑 아래 군산과 멀리 임진강 등에서 공수해 오고 있는 것들이다.

류제협 논산문화관광해설사는 “강경의 옛 영화는 금강의 물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사라진 영화를 되찾을 순 없겠지만 강경이 되살아나려면 금강의 물줄기가 되살아 나야 하고, 그것을 빼놓고는 강경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이종섭·사진=김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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