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열시에 그곳에 당도해야 한다. 그래야 점심약속에 댄다. 꾸물거린다. 시간 경과. 급기야 택시타기. 모범운전자 아저씨가 운 뗀다. 글 소재 나오려나. 호기심 발동한다.
훤해 보이시네요.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시네요. I go 고맙습니다. 예순 넷이거든요. 몇이신지요. 사십일 년생이라 하신다. 말길 개방. 언로 트였다. 듣고 묻기만 하기로 작심한다.
스물세 해째 운전대 잡으신단다. 애들 다 키웠다. 몇 년 후 은퇴할 생각. 공제회에서 받을 돈이 이천이백만 원. 이 정도면 그럭저럭 집사람과 함께 지낼 만하다 하신다.
아니 남들은 그렇지 않더구먼요. 몇 억 있어야 한다던데요. 아 그거야 있는 사람들 얘기지요. 우리 서민이야 어디. 언감생심이지요. 그래도 제 형편은 좋은 편이지요.
동생이 얼마 전 명예퇴직 했어요. 삼십년 넘게 일하다가 그리 됐지요. 어깨에 힘 넣고 다니는 곳이었지요. 폼도 재고 푼돈도 생기고. 아 이 녀석이 한창 일할 나이에 바람피웠어요.
이 말에 뜨끔. 어디 한눈팔지 않는 사내 있나. 들리지 않게 독백. 바깥 길 탔구먼요. 아예 칠년이나 딴 살림 차렸지요. 호적에 들지 않으면 삼년이라던데. 길었네요.
결국 집으로 돌아왔지요. 가족과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 아버지라 불러도 예전 같지 않았지요. 그러다 백수 신세. 그 짓 하느라 돈 많이 까먹었고. 퇴직금 몇 푼 수중에 남았지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요즘 인생. 어떻게 이끌어 나가려는지 걱정이지요. 손님은 곧은 길 걸어오신 듯 보이네요. 무슨 말씀을. 한길만 다니려 노력은 했지요. 곡절이야 없었겠냐 했다.
그러다가 목적지 도착. 일마치고 앵구와 밥상을 마주했다. 내가 원체 연락 안하며 사는 스타일. 휴대폰은 있되 받지 않고 산다. 그래서 대팔로부터 배려가 부족하다는 말도 들었다.
안부 전해오기는 당연 저쪽 몫. 이번엔 달랐다. 오뉴월과 칠월 내내 무소식. 생존 중이시냐는 편지를 냈다. 그리 하고서도 한참 후 전화 왔다. 밥자리 마련됐다.
고민 많아 그랬다는 첫말. 오십대 중반을 향하는 연령. 10년 차이지만 아우이자 친구다. 내 뒤를 줄곧 따라 왔다. 생각도 옷차림도 언동도 비슷해졌다. 붕어빵 일 형제다.
머리 싸매며 뒤척였던 사연. 다름 아닌 앞길문제였다. 험한 꼴 자초함 없이 밝은 길 걸어 왔다. 맑은 사람. 적어도 십년 걸어 갈 길 찾으시라고 권했다. 현문에 우답.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종준 군 생각이 난다. 막내아우 연배. 그 무렵 막내는 버클리를 나와 공인회계사로 일 했을 터. 80년대 후반이었던가. 여하튼 시라큐스 유학생 종칠이가 보고 싶었다.
미국 출장길. 일정 가운데 하루를 빼내 들렸다. 웬 눈이 그리도 왔는지. 미끄러지며 휘청거리며 걸었다. 손잡아주던 그 손. 따듯했다. 형 사랑해요 하는 소리 들리는 듯 했다.
종칠이는 앵구보다 십년 젊다. 후반부 인생을 지금 궁리하고 있을까. 앵구는 그렇게 말했다. 아직 느끼지 못 할 거라고. 하긴 나도 그만 두고 나서야 아차 했다.
인생 여정. 장정이다. 누구는 추스르며 바른 길 간다. 누구는 지쳐 엇길 간다. 아껴야 할 그들. 정도(正道)와 사도(邪道)를 안다. 바른 길 걸으려고 고뇌한다. 모습이 아름답다.
마르켈 독일총리가 그랬던가. 젊은 시절 비밀경찰 요원 자리를 제의 받았다. 내게 맞는 길이 아니었다. 그래서 거절했다고. 중팔 선생은 어떠신가. 만절(晩節) 훼손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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