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용오 배재대 인문대학장 |
선진국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아시아의 일본, 서유럽의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북유럽 몇 개국 및 오세아니아의 호주 정도에 그치고 있다.
중국·러시아·브라질·멕시코·인도 등은 경제규모는 크지만 1인당 소득이 못 미치고, 쿠웨이트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은 소득은 높지만 산업생산력이 부족하고,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는 국토나 인구가 기준에 미달하고, 대만은 독립국으로 보지 않는 것 등으로 그나마 위의 여러 기준에 가장 근접한 나라는 현재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주식시장에서 세계 양대 벤치마크지수라 할 수 있는 FTSE에서 이미 한국을 선진국지수에 편입하였고, MSCI도 내년에는 승격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것 등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돌이켜 보면 대견하고 가슴 뿌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첨단 자동차와 배와 IT제품들로 세계 제일을 다투고, 일본도 아직 실현하지 못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까지 이룩하였으니…. 하지만 이걸로 이제 앞선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간 우리나라가 다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성장의 과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민들이 독점한 것도 사실이다. 서울에는 돈이 넘쳐 아파트 한 평이 수 천 만원이나 하고, 번화가는 명품으로 치장한 멋쟁이들로 흥청대지만, 지방 중소도시나 농어촌은 젊은 사람 구경하기 힘든 을씨년스런 버려진 땅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전국토의 10분의 1 남짓 되는 땅에 전인구의 절반이 모여 살면서 대한민국이 창조한 온갖 풍요를 독식하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의 자랑스런 서울이며 수도권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지방 사람이 서울에 가면 잘사는 딴 나라에 간 것 같고 서울 사람이 지방에 가면 못사는 다른 나라에 간 것 같이 되어버렸으니 이것이 진정 선진국 진입을 바라본다는 나라의 올바른 모습이라 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과연 어느 선진국이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서울(수도)에만 모여 살며, 명문대는 몽땅 서울에만 몰려 있으며, 좋은 병원도 서울에만 있어 웬만큼 큰 병이 나면 전 국민이 몇 달씩 차례를 기다리다 치료를 받는 나라가 있는지, 또 어떤 선진국이 직장이 지방에 정해졌는데도 식구들은 계속 서울에서 살게하고 평생을 주말부부로 살아가는 나라가 있는지, 지방민들이 이름난 공연이라도 한 번 보려면 큰 맘 먹고 서울까지 가야만 하는 나라가 있는지, 지방엔 빈집들이 계속 느는데도 서울엔 노숙자가 넘쳐나는 나라가 있는지 과문한 탓으로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러한 기형적 수도권 편향의 선진국은 아직 없으니 우리나라가 만약 선진국이 된다면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축하를 해야 하나 고민해 볼 일이다.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서 선진의 반열에 오른 일본은 지금 국민 사이에 `국가의 품격'이 화두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품격까지는 어렵더라도 선진국이 되기 전에 `지역간 불평등'만이라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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