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앞에 지명을 붙인 노래는 여기서 다 헤아릴 수 없다. 목포 블루스, 군산 블루스, 대구 블루스, 인천 블루스, 부산 블루스, 서울의 블루스, 종로 블루스, 을지로 블루스, 소공동 블루스 등등 많고 많은 가운데 안정애의 대전 블루스가 줄행랑을 거느린 부잣집 솟을대문처럼 홀로 우뚝하다. 안정애는 황혼의 블루스, 밤비의 블루스, 순정의 블루스, 도라지 블루스처럼 ‘블루스’ 시리즈를 유난히 많이 불렀다.
올해로 대전 블루스가 햇빛본 지 어언 50년, 반백년이면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인 역(驛)을 반추해낼 만한 연륜이다. 마분지 ‘애드몬슨 승차권’은 PDA가 접수하고 목포행 완행열차는 이별가 한 자락의 여유조차 안 주는 KTX에 자리를 뺏겼다. 춘향과 몽룡이 대전역에 지금 있다면 무슨 놈의 이별을 뼈가 녹작지근 길게 했을 것인가.
만남과 헤어짐의 방식이 어떻든 대전역을 어찌 경험했든, 대전역은 오랜 정한을 간직하고 실재하는 공간이다. 하이든의 시, 질허의 곡이 없는 로렐라이 언덕은 그냥 언덕이듯이 최치수 시와 김부해 곡이 아니면 대전역은 그저 평범한 역일 뻔했다. 0시, 허름한 선술집과 목쉰 기적소리는 천금을 줘도 못 살 문화 자산이다. 그 기억을 편린을 모아 동구청에서 대전역 0시 축제(8.14~16)를 준비하고 있다.
3일간, 있는 그대로를 즐기는 추억극 한 편 만든다고 생각하자. 평범하면서 잘하기란 지난한 일이지만 너무 번잡하면 비본질적으로 흐르고 만다. 축제의 본질은 평소 못 보고 못 했던 것을 허용하는 것, 장 뒤니뇨가 말한 “일상성의 단절”이다. 서울라이트(서울내기)들이 지치면 춘천 가는 기차에 오르듯이 기신기신 지친 현대인들이 대전행 열차에 훌쩍 몸을 의탁하게 되는 축제이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사북역, 송정리역, 김유정역, 조치원역처럼 여운이 긴 역이름에 과거완료형이면서 현재진행형인 대전역을 보탤 것이다. 안정애, 김용임, 조용필, 김수희, 장사익이 각자의 ‘필’로 부른 대전블루스에 아오에 미나, 미즈오리 가오리의 대전부루-스(大田ブル-ス)까지 실컷 듣고 나니, 이 세상은 실제 아름답다고 착각함으로써 아름답다고 생각된다. 퇴색된 기억으로 추억을 미화하는 사회적 착각, 붙잡아도 뿌리치는 완행열차의 새털같이 가벼운 자유가 그래서 나쁘지 않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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