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로부터 기증·기탁된 유물들이 성격에 맞지 않는 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가 하면, 부족한 인력으로 기증 10년째 목록정리 작업이 진행되는 등 지역의 역사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07년 6월 조선시대 학자 동춘당 송준길(1606~1672) 선생의 13대 손인 송봉기(당시70세·대덕구 송촌동)씨는 대전시에 722종, 3795점에 이르는 대량의 유물을 기탁했다.
당시 기탁된 유물은 고문서(55종 1861점)와 필첩 및 서화(161종 175책), 고서(304종 1500책), 기타(202종 259책) 등 동춘당 선생의 사상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기탁된 유물 가운데 동춘당의 증손부로 조선시대 충청지역 유일의 여류시인이었던 안동 김씨 부인의 시집 `호연재유고'도 포함돼 있어 추후 문화재, 보물 지정도 예측됐다. 당시 대전시는 기증받은 유물들에 대해 `앞으로 건립예정인 대전종합박물관에 동춘당 특별기념실을 마련해 공개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 지역 유물 전시와는 거리가 먼 국립박물관 유치 이야기만 떠돌 뿐 대전종합박물관 건립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 조선시대 학자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고문서와 필첩 및 서화 등 기탁된 유물이 대전시 선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박물관 관계자가 유물을 공개하고 있다./지영철 기자 |
동춘당 유물들이 성격이 다른 선사박물관 수장고에 잠자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들 유물에 대한 보존처리 과정도 2007년 기증받은 이후에는 일손이 없어 지난해 말까지 손도 대지 못하다 현재 목록작업을 마치고 심화분석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선사박물관 수장고에는 동춘당 유물 외에도 은진 송씨 늑천가 유물 1만 여점과 연안 이씨 유물 320여점, 창원 유씨 도원공파 유물 200여점, 제월당 유물 등 다수가 보관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가치 있는 유물들이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다는데 있다.
선사박물관은 선사시대 유물을 상설 전시하는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실 등이 있지만, 이들 지역 역사 유물들은 선사박물관의 성격에 맞지 않아 상설전시가 불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특별전시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전시가 어렵다는 얘기다. 선사박물관 측에서는 특별전시 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이들 유물로 특별전시를 한 경우는 없었다.
향토사료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전시는 10여 년 전 은진 송씨 늑천가 유물 1만여 점을 기증받았고, 보존상태가 형편없었던 자료들은 향토사료관에 보관중이지만 부족한 인력으로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 유물에 대한 목록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한밭도서관 건물을 활용하는 탓에 박물관 설비 등을 할 수 없는 데다 전시공간이 좁고 수장고도 포화상태여서 현재 상태로는 적극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관련 분야에서는 궁극적으로 향토사료관을 이전해 지역의 유물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근 지자체의 박물관 관계자들은 “대전에 전시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은데 타 지자체 박물관으로 이관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상처어린 말을 전하기도 한다.
류용환 대전선사박물관장은 “시립 박물관이 생기면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과도기적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시도 중요하지만 필요할 경우 제대로 전시될 수 있도록 관리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열악한 상황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영·강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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