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보수비가 없다는 이유로 기증한 유물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분실이나 훼손 사례가 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안도 없는 상황이어서 이를 수년간 방치하고 있다.
8년 전 고(故) 박정순 씨는 평생 동안 모은 민속자료와 각종 책, 의복 등 600여점을 대덕구청에 기증했다.
박 씨가 대덕구에 거주하고 있는 데다 소장 유물 가운데는 대덕구 호패와 각패 등 지역 자료가 포함돼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대덕구 문화원에 200여점만이 남아있는 상태로 무려 3분의 1의 자료가 소실됐다.
고인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기증 후 수장고에 물이 찼고, 이 과정에서 서책과 의복 등 상당수의 자료들이 훼손되거나 버려졌다는 것.
이들 자료들은 대덕구 문화원에 마련된 전시 공간을 통해 공개되고 있지만, 장소가 협소한 탓에 복도 전시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편 김모씨는 “살아생전 평생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 모은 소중한 유품을 너무 함부로 관리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며 “600점이나 기증했지만, 도록 한 권 만들지 않았고 안내서는 3~4년 전에 이미 떨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암사적공원 유물관의 사례는 더욱 비참하다.
유물관에는 기증과 기탁을 통해 모두 54종 185점의 유물과 23종 28점의 자료가 소장돼 있지만 현재 유물관에는 20여종의 유물과 자료들만 전시돼 있다.
보존상태가 불량한 유물이 많아 보존처리가 요구되고 있지만 유물관에 책정된 문화재 유지 보수비가 전혀 없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수장고에 보관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물관측은 우암문정부군친필장족 유물을 비롯한 영정초본, 운평송능상일련사, 동춘당송준길 선생의 편지, 부조기록 등 10여점이 보존상태가 불량하고 보존처리가 필요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보존처리 비용이 없어 훼손되고 있는 유물들이 향토사료관 수장고에 방치돼 있는 상태다.
보존상태가 불량하다는 표시만을 해뒀을 뿐 더 이상 훼손을 막기 위한 대안마련에는 손을 댈 수 없는 처지다.
더욱이 20여점의 유물을 기탁한 한 기탁자는 “관리 행태에 문제가 있다”며 “올해 말 기탁기간이 만료되면 즉시 기탁 유물을 회수할 것”이라고 말해 자칫 전시관에 망가지고 빈약한 유물만 남게 될 우려가 높다.
지역의 또 다른 유물 소장자는 “시의 유물관리 실태는 한 마디로 매우 처참하다”며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속된 말로 ‘줘도 못 먹는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유물에 대한 시의 안목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동산문화재 중 가장 많은 것이 지도 등 고문서인데 개인의 손에 있으면 보존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때문에 기탁이나 기증을 독려하고는 있지만 이를 소화할 공간이 부족한 데다 딱히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숙원사업으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해왔지만 현재로서는 이렇다 할 계획이나 성과나 없는 상태”라며 “유물 소장자들의 불만이나 비판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김민영, 강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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