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서 나온 노인들이 왕복 2차선 도로를 아찔하게 곡예 횡단하고 있었다.
차량 속도는 50~60㎞/h 가량은 돼 보였지만 노인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교통안전시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과속방지턱 1개소가 전부였다.
이곳은 노인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대전시와 대전경찰청이 노인보호구역 일명 ‘실버존’으로 지정한 구역이다. 말만 실버존일 뿐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나 각종 안전시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덕구 읍내동 대덕노인종합복지관 앞 도로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 역시 실버존으로 지정돼 있지만, 안전시설은 전무하다.
계족산행을 위한 행락객 차량을 힘겹게 피해 다니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실버존은 지난 2007년 11월부터 노인보호구역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라 지자체와 경찰청이 합의해 복지시설 등의 300m 이내 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돼 있다.
실버존으로 지정되면 차량 속도는 30㎞/h 이하로 제한되고 횡단보도 신호등 점멸 시간도 일반 신호등보다 길게 운영된다.
방호울타리, 과속방지턱 등 각종 안전시설 설치는 기본이다.
대전에 실버존으로 지정된 곳은 동구, 중구, 유성 각각 2곳, 서구, 대덕구 각각 1곳 등 모두 8곳이다. 그렇지만, 시설 개선이 완료된 곳은 단 1곳도 없다.
서울은 지정된 19곳에 대해 모두 시설 개선을 했고 경기도도 29곳 중 23곳을 완료했으며 인근 충남 역시 2곳에
대해 시설 개선을 마쳐 대조를 이루고 있다. 차일피일 미뤄지는 실버존 시설 개선으로 노인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실제, 국회 행장안전위원회 유정현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대전지역 전
체 교통사고 사망자 458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42명으로 31.8%였으며 2008년(8월말)에도 전체 320명 중 31%인 22명에 달하는 등 노인 교통사고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실버존 시설 개선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대전시와 경찰이 예산타령만 할 뿐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돈 없는 경찰은 대전시만 바라보고 있고 시 역시 명확한 투자 계획은 밝히지 못한 채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시 관계자는 “스쿨존의 경우 국비 50%가 지원되지만 실버존은 순수 지방비로 지원해야 해 빠른 예산 지원이 어렵다”며 “일단
올해 추경에 2억 원 가량을 편성해 의회로 제출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버존 예산이 과연 의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이다.
통과된다고 해도 실버존으로 지정된 8곳 가운데 단 1곳에 대한 예산 규모밖에 되지 않아 실버존 시설 개선은 향후 장기간 표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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