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노인 칼은 홀로 남았다. 아내를 잃고 상실감에 젖어 있던 칼은 요양소로 끌려가기 직전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동물원에서 풍선을 불던 소싯적 실력을 발휘해 자신의 집을 들어 올려 비행하기로. 행선지는 아내가 생전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남아메리카 파라다이스 폭포다. 낡은 집이 막 떠올랐을 때, 문밖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진다.
한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모험을 꿈꾸는 소년과 말괄량이 소녀는 어느덧 자라 결혼식을 올리고, 간절히 원했던 임신에 실패하고, 슬픔을 사랑으로 위로하는 둘은 저택을 꾸미는데 열중한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늙고 쇠약한 소녀가 먼저 눈을 감는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늙은 남편이 홀로 파란 풍선을 들고 집에 들어서기까지.
길다면 긴 인간의 생애를 이렇게 시적으로 압축한 장면이 또 있을까. 단 한 마디 대사도 없이 서정적인 왈츠 선율에만 기대어 그려내는 4분가량의 초반 시퀀스는 아마도 픽사가 이제껏 만들어낸 모든 장면들 중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잔상을 남기는 명장면일 것이다. 이 부분만으로도 극장을 찾은 성의에 충분히 값한다.
‘업’은 시종 유쾌하다. 괴팍한 노인 칼과 호기심 많은 소년 러셀이 말하는 개와 거대한 희귀새를 만나 신비의 폭포를 향해 가는 여정은 러셀의 순진무구한 좌충우돌과 근력 약한 노인들이 비행정에서 벌이는 아찔한 액션까지 기분 좋은 유머가 시종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눈도 즐겁다. 수많은 풍선들이 일시에 부푼 후 마침내 집이 두둥실 천천히 떠올라 비행할 때의 우아한 리듬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아름답다. 머나먼 미지의 땅으로 표현된 모험의 공간 ‘잃어버린 세계’의 풍경도 눈이 시리다. 화면을 채우기보다 숨통을 트여놓는 미덕도 좋다.
‘업’의 진정한 힘은 아름다운 그림에 있지 않다. 가장 쉽고도 고전적인 화술로 마음의 우물을 휘젓는 이야기에 있다. 배꼽 쥐게 하다가 콧등 찡하게 가슴을 두드리고 번갈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업’을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어렸을 적 품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던 꿈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다. 인생에서 진정한 모험이란 우리가 가족, 친구들과 더불어 누리는 아주 작은 일들이다.
이왕이면 3D 상영관을 선택하면 좋겠다. 풍선 집이 비행하는 장면이나 클라이맥스 액션신은 역시 입체영화로 봐야 제대로 맛이 난다.
어린 자녀들과 극장을 찾는다면 우리말 더빙판을 보는 게 이해가 쉬울 듯하다. 일흔여덟 고집불통 노인네의 우리말 더빙은 누가 맡았을까.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이순재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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