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1980년 들어선 동양백화점이 대전지역에서는 진정한 형식을 갖춘 백화점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당시 대전지역에 백화점으로 불렸던 대전백화점, 유락백화점 등은 대부분 임대매장으로 이뤄진 반면 동양백화점은 매장을 대부분 회사 직영매장으로 운영했다는 것. 또 회사 직영체제로 운영하면서 백화점의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었고 환불 등 임대매장에서는 이뤄지기 어려운 서비스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기억했다.
“동양백화점의 개점은 대전지역에서 백화점의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분기점이었습니다. 지역 토박이 유통업체로 지역 시민들의 호응도 높았지요.”
이 교수는 1980년대 백화점 고객을 `새로운 상품에 호기심이 매우 강했던 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정기적으로 세일을 하거나 경품으로 자동차 등을 내걸고 행사에 들어가면 그 주에는 백화점 고객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 지금과 같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한규정이 없을 때는 자동차에 아파트입주권까지 경품으로 내걸고 시민들을 모았다고 얘기해 줬다. 또 작은 행사에도 시민들이 백화점에 찾아오는 등 마케팅에 대한 반응이 곧바로 돌아와 일할 맛이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백화점에서 영업총괄과장을 하면서도 당시 구름같이 몰려드는 손님에 바쁘게 일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1980년대 중반부터 판매가 시작된 상품권도 백화점 호황기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줬지요.”
이런 호황 때문이었을까. 1986년 전국 백화점을 강타한 사기세일 파동이 대전에도 일었다. 가격 이중표시, 품질 낮은 제품 판매 등 백화점들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과도하게 욕심부리다 생긴 전국적인 모든 문제가 이때 한꺼번에 불거졌다. 결국 형사고발에 과징금까지 물어야 했지만, 이 교수는 이때의 경험으로 백화점이 공정한 경쟁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대전지역 백화점 역사 20여 년의 시간 동안 가장 바뀐 것은 백화점에 대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백화점 상품을 고급스럽고 비싸기만 하다는 생각에서 지금은 많은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필수품을 백화점에서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 일부 상품군은 다른 전문매장보다 저렴하게 판매되면서 백화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피력했다.
“지금은 백화점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 봐요. 그래도 눈높이가 높아진 고객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백화점마다 특색있는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유통업만큼 차갑고 경쟁이 심한 직업도 없을 것”이라며 “백화점이 쇼핑의 중심에 섰던 당시가 백화점의 가장 호황기이었던것 같다”고 말했다./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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