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이후 여러 가지의 것들을 대입해보곤 했다. 예컨대 `나는 문화봉사자입니다'와 `왜 문화봉사자인가', `이것은 책입니다'와 `왜 책인가' 등의 물음을 갖고 곰곰이 생각하는 순간 이제까지 해왔던 그 많은 공부라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박제화된 지식의 나열이었던가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습성은 무섭게도 `왜'를 잊게했고, 그저 시간을 따라 개념없이 살아가곤 했다.
홍성환경교육관에서 열린 `여름 생태 귀농학교'에 다녀왔다. 일정이 맞지 않아 끝까지 수료하고 오지는 못했지만 다시 `왜'를 묻게 된 교육이었다. 몇 년전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붐으로 고가에도 불구하고 유기농매장은 활황이다. 나의 경우 친환경 농산물 이용을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구매하기 시작한지 거의 20여년 되는 셈이니 꽤 오래된 생협이용자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친환경농산물입니다 였지, 왜 친환경농산물이어야하는지 왜 비싼 가격을 치르고 먹어야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식사기도도 꼬박꼬박하긴 한 것 같은데 그저 먹을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린 기도였던 것 같다.
몇해전 여름 휴가차 남쪽지방의 시골길을 가던 중 저 멀리 논밭 사이로 점 같은 보인 물체가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농부였는데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후 그 잔상은 오랫동안 남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듣는 것 같았다. 그러다 농장체험프로그램을 하면서 느꼈던 것, 33㎡(10평) 주말농장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귀농학교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농장체험을 다녀오면 일용할 양식으로서의 농산물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을 느끼게 되어 단순 식용작물에서 의미있는 식품이 된다. 더구나 주말농장을 하기 위해 장에서 모종을 사서 심은 상추, 고추, 그리고 감자 수확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흙과 햇빛, 비,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생명을 준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그래서 소중하게 먹을 수 있게 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먹거리는 어떠해야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귀농(歸農)은 도시 탈출이 아니라, 직업 전환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과 자연 친화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으로 보아야한다. 고구마 밭의 잡초를 뽑으며 생각했다. 잡초가 있으니 가려주어 시원했는데, 저 인간들이 더 큰 고구마 먹으려고 잡초를 잘라버리네 라고 원성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잡초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라면 고구마에게도 좋은 환경일진대 비닐을 덮어 잡초도 자랄 수 없는 곳이라면 미생물 역시 번식할 수 없는 환경에서 고구마만 맥없이 크면 그 고구마가 사람에게 뭐 그리 좋을 것인가 하는 것이 이번 귀농교육에서의 깨달음이다.
요즘 창의적 교육, 통섭이 화두다. 의식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그 모든 것이 전문가의 손에 맡겨져 있을 뿐 우리의 생활전반을 관통할 수 있는 원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본교육이 너무 없다. 그나마 문화유산답사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관통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엿보기도 한다.
생태프로그램을 정교하게 기획하여 자연의 순환원리와 유기적 생명의 순환관계를 이해하고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프로그램이 통섭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들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